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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에 가래를 뱉었다. 231218창작/관찰 (수필) 2023. 12. 18. 23:52
겨울이 왔고 감기를 앓은지 열흘이 조금 안됐다. 코를 훌쩍이면서 올해를 마무리 해서 보내는데, 어영부영 닥친 일들만 간신히 넘겨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의무와 열망이 서로를 닮아가며, 의무는 다하고 싶어졌고 열망은 점점 숙제처럼 변해갔다. 열심히 헤엄쳤다고 생각했는데 어디가 수면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래가 새겨진 문진을 사서 책에 괴어 놓고 포스트잇을 다닥다닥 붙였다. 꼭 티벳 고원의 오색 룽타(風馬, 오방색으로 이뤄진 깃발)처럼 펄럭이는 그것들을 태계일주의 기안이 된 것 마냥 방바닥을 긁으며 멀뚱히 바라본다. 올해 안에는 그간 쓴 글들을 묶어서 소규모로라도 펴 내겠다고 다짐했지만, 생각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신체 기관에 관한 수필들인데 마지막으로는 뇌에 대해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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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230609창작/관찰 (수필) 2023. 6. 9. 21:30
문신230609 직장생활을 하며 깨달은 것은, "나의 사생활 속에서 사람을 새로이 깊게 알게 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선이 분명하다기 보다는, "다 함께 성장해가던 미숙한 단체생활이 더이상 없으리라"는 점이 차이점이었을까. 와류에 휩쓸리며 밥알같이 익어가던 뜨거운 증기의 시대는 갔다. 각자의 삶은 중요했고 예절은 분명했고 사람들은 그 간격에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다. 나 역시도 종종 그랬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이 있으면 만나지 않으면 된다. 애초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굳어진 각자의 동선을 구부려 교차로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프로토콜은 대개 안전했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보는 데 있어 '확률'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적 고정관념에도 큰 문신을 한 사람들은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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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대화의 조건창작/관찰 (수필) 2023. 6. 5. 11:04
1. 궁극적이고 큰 영역의 범주에서는 목표 또는 이데아가 같을 것 (공공선, 화합, 번영 등) 2. 당장의 형태외에도 본래의 모습 및 분산도 모두 고려할 것 (이것이 전부인가? 또는 지금 나의 발언이 나의 본래 모습을 충분히 반영하는가?) 3. 대화에 필요한 에너지(감정, 시간, 인력, 비용, 전문성 등)를 충분히 감안하고 계획한 뒤 그것이 가용할 것 4. 대화의 구성에 사실성(사실인가) 연관성(관련이 있는가) 충분성(그게 전부인가) 이 갖춰져 있을 것, 참고 ) 같이 갈까요? 평소와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 시간 가능하세요? 정말로 그런지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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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주변을 채우는 것에 관하여- (230505)창작/관찰 (수필) 2023. 5. 6. 01:49
갓 5월이 된 요즘, 날이 따뜻하다 또 서늘하기를 반복하는 덕에 나는 크게 앓았다. 양해를 구하며 약속을 취소한 뒤, 누워있다가 또 목이 부으면 앉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반쯤 죽어있다. 핸드폰 게임에 폰이 더워지고, 애매하게 새로운 영상들과 오래된 영화들도 지겨울 무렵, 창 밖엔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이렇게 방에 처박혀서 밖을 바라보는게 얼마만인지 나는 모른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는 다들 갇혀있으니까 그다지 외롭지는 않았다. 그 상황과 감정을 공유하며 시시덕 거렸기에, 홀로 겪는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과는 달리. 공허할 무렵 내리는 비가 반갑다. 어디 나가려고 할 때는 그토록 거추장스럽던 비가 미스트에서 뿜어저 나오는 것처럼 입자가 곱고 상냥하다. 생각해보면 어린 나는 비를 참 좋아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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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면 - 개운한 아침을 위하여 (230416)창작/관찰 (수필) 2023. 4. 16. 21:27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면 꼭 따뜻하고 개운한 느낌이 함께한다. 말캉하고 따끈한 부드러운 길쭉한 고양이 한 마리가 몸을 부벼온다. 털은 길쭉하고 사이사이엔 밍크같은 질감의 솜털이 쫌쫌하다. 색깔은 대개 하얗고 또 군데군데 얼룩덜룩 한데, 안아달라며 보채는 핑크색 발바닥은 발톱을 말아 쥐고 지키고 있어 상냥하고 또 잔망스럽다. 떼어내야 한다고 한참을 씨름하며 흐린 정신의 수면을 오가다 보면, 사실 고양이 같은 것은 없고 나는 X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나친 개운함에는 언제나 불길함이 함께한다. 어른으로서의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또 하나의 표본이 되어 모두가 약속한 시간을 빗맞은 나는, 한산히 표류하며 몽롱하다. 몹시 피로한 날에는 마치 거대한 주사기에 식염수를 가득 채우고 나의 뇌를 팔다리로 밀어 넣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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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엮으며창작/관찰 (수필) 2023. 4. 2. 22:49
책을 엮으며 230402 현재 넷플연가라는 플랫폼을 통해 ‘한 번쯤, 독립 출판 - 나만의 책 만들기’ 라는 4주짜리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 이 과정에 참여하면서 지난 7월부터 2주에 하나씩 작성했던 17편의 수필 혹은 과학 수필을 모으면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듣기로는 A4 한 페이지당 보통 4~5페이지의 책 분량이 나온다고 했고, 나는 한 편의 에피소드를 쓸 때마다 (체감상) 3페이지정도는 썼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200페이지에 해당되는 얇은 책 한 권 분량이 다 마련됐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 걸 일단 분량부터 130 페이지로 200페이지에 턱없이 부족했다. 얇은 책이라고 라도 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150page는 되어야 한다. 때문에 최소한 세 개의 에피소드를 더 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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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잡기 (도파민, 마실수록 갈망하게 되는 바다에 대하여) 230320창작/관찰 (수필) 2023. 3. 20. 22:30
꼬리잡기 (도파민, 마실수록 갈망하게 되는 바다에 대하여) 230320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1988년에 브라질에서 출판된 이 책은 한국에는 2001년 2월에 출간 되었는데 무려 4년간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보물을 찾기 위한 산티아고의 여정은 별의 별일을 다 겪게 된다. 운명과 보물을 찾아서 피라미드로 떠나는 여정에서 산티아고는 별의 별 일을 다 겪게 된다. 길고 긴 여정 끝에 산티아고는 자신의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주인공이 '보물을 찾았는가?'에 주로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갓 중학생이 되었던 나 역시도 그랬지만 근래에는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때로는 예측하지 못한 여정이 우리를 목적지로 데리고 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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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박수 (230304)창작/관찰 (수필) 2023. 3. 4. 05:06
몸이 무거워진 뒤에는 더더욱 유산소 운동을 즐겨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뛸 수 있는 코스가 있다. 동작역에서 시작해서 반포대교를 건넌 뒤 다시 동작대교를 건너 돌아오면 얼추 5km가 나오는 코스이다. 맑은 날이면 강 건너의 남산타워가 보인다. 반포대교를 향해 뛰다 보면 좌측으로는 세빛섬이 보인다. 반포대교는 2층으로 구성되어있는 교량인데, 아래층은 홍수가 나면 잠기도록 설계한 잠수교이다. 잠수교에 도달할 즈음 만나는 곳은 반포 한강 공원으로, 강가에는 수변무대가 존재하는데,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곳에 사람들이 둘러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으며 아련한 표정으로 강을 바라본다. 그런 표정들은 보기 드문 편이기에, 나는 이 곳을 좋아한다. 만일 4~10월 오후 7시 30분~9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