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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날개뼈) - 수필창작/관찰 (수필) 2022. 9. 2. 01:05
어깨 (날개뼈) – 220901
사마귀는 웨이트 트레이닝 없이도 머슬업을 쉽게 한다. 참으로 강철 어깨다.
그러니까 약 10개월 전쯤인, 작년 11월에 벤치프레스를 하다가 어깨를 꽤 심하게 다쳤다. 당시에 나는 회사에서 저녁시간 직후에 끝나는 세미나를 매주 듣고 있었다. 세미나를 듣기 전에 빠르게 운동을 마치기 위해 보통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는데, 그날따라 정찬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일반식을 먹은 뒤 식사를 막 마친 채로 바로 운동을 하러 가서는, 평소처럼 1 round maximum 무게까지 치고 올라갔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식사로 인해 배가 나온 채로 프레스를 하다 보니 흉추 신전을 충분히 할 수 없었고 바가 가슴에 닿을 때쯤 위팔뼈 및 날개뼈가 충분히 후인 할 공간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것이 어깨 부상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그로부터 굉장히 오래 고생했다. 마사지도 받고, 온갖 지압기구를 샀다. 유독 소원근을 포함한 날개뼈 주변이 아파서 열심히 눌렀고 어깨 전면부로 통증이 옮겨가서 거기도 열심히 주물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깨 후면은 액와신경과 견갑하신경이 지나가는 길목이었고 전면부는 요골신경이 지나가는 길목이었다. 신경은 주무를수록 되려 악화되는 경향이 있고, 주변 근육의 염증이 해당 신경들을 눌렀거나 혹은 그 신경가지들의 압박이 큰 줄기의 통증 때문인 것으로 착각되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통증이 있는 부위들 위주로 침을 맞다가, MRI를 찍은 뒤 견갑하근에 염증이 있는 것을 확인했고 그 기시부와 정지부를 중심적으로 침을 맞고 휴식을 취했더니 지금은 좀 괜찮아졌다. 올바른 벤치프레스의 감을 익힌 것도 (쉬는 게 제일이었겠지만) 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벤치프레스 무게가 자기 몸무게의 1.n배 근처로 도달하게 되면 이런 어깨부상을 많이 당한다고 한다. 요새야 운동 유튜버들이 유명해지고 정보도 많이 공유되어서 좀 다를 수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통과 의례를 대부분 거쳤다고 한다.
자연스럽지 않은 아픔을 참고 열심히 하는 것이 이렇게 위험하다. 고통이라는 신호를 참고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열심히 하게 될 경우 되려 장기적인 성장을 저해한다. ‘되면 한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도는데, 나는 굉장히 현명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안되면 안 하는 나태’와는 또 다른 이야기다. 해서 안되면 되는 다른 방법을 계속 찾는 것 역시 부지런함 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통을 찬양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꼰대의 슬로건이 되었음에도 한국 사회 집단의 무의식적인 영역에서는 새마을 운동 때 부터 뼈에 새겨진 ‘요행 없는 근면함’이 자주 고개를 든다. 그러한 맥락에서 ‘정도를 걸을 때 수반되는 고통’과 ‘잘못된 방식을 고집할 때의 부작용으로서의 고통’의 차이점을 어떻게 찾느냐고 스스로 되물은 적도 많다. 그걸 알아내는 정해진 방법도 딱히 없는 것 같다. 지루하고 조심스러운 모험들의 짜깁기 외에 다른게 있을까? 타인이 이미 완성한 이론을 참고하거나, 타인의 시도들을 모아다 추려보거나, 스스로 직접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서 비교하는 등 우리는 부지런히 부작용과 성장통을 구분해야 한다.
약 7년간의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가슴에 새겼던 말은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 라는 뉴턴의 말이다. 이 말을 처음 한 게 뉴턴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공계에서 이 말이 유명해진 것은 뉴턴이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에게는 뉴턴의 겸손함을 일컫는 말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Reference의 중요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누군가가 한 일을 반복하는 것은 연구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골백번을 들었기에, 눈을 감은 채로 더듬는 나의 손 끝이 거인의 정강이인지 어깨인지를 구분하는 피곤한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더 많은 새로운 것들을 알아내기 위해 이미 알려진 것들의 끝자락에서 질문을 낚아야 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들도 처음에는 편집증 있는 누군가의 상세한 시도들이었을 것이다.
꼭 과학이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에게 ‘부작용이 없는 성장통’ 혹은 ‘지속가능한 열정과 행복’을 구별해 내는 일은 중요하다. 남들과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나의 관점은 인류가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실험일 것이다. 우리가 양손을 머리 위로 들면, 180도 들어 올려진 위팔뼈가 관절과 견갑하근을 갉아먹지 않도록 우리의 날개뼈는 위팔뼈의 절반 정도를 함께 회전하여 길을 내어준다. 육체의 성장, 지식의 성장, 나의 성장, 사회의 성장은 모두 어느 정도의 회복 탄성력(resilience)에 대한 공산을 영양분으로 삼는다. 삶은 길고, 생각보다 문제는 다양하며, 우리는 소중하다.'창작 > 관찰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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