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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가락
    창작/관찰 (수필) 2022. 7. 15. 15:45

    나에게는 큰 콤플렉스가 있는데, 그것은 손이 참 못생겼다는 것이다. 기억이 시작된 지 30년 정도 살아보면서 손이 고운 남자를 이상형으로 뽑는 여성을 본 기억이 많다. 예쁜 손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시작되었을 사춘기 무렵에는 이미 너무 거칠고 마르고 두꺼워져 있는 손가락 마디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예쁜 손에 대한 잠잠한 동경을 뒤로하고는, 나름 도전해 볼 만한 어필의 방향으로 튼튼한 체격을 가지려는 목표를 세웠다. 군생활 이후로 강해져 보겠다고 무겁고 거친 것들을 들어보았고, 손바닥에는 징이 박힌 듯 굳은살이 통통통 박히게 되었다. 나름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손바닥을 바라볼 때면 그래도 떳떳하게 느끼지만, 손가락이 접히는 부분에 있는 굳은 살은 어쩔 수 없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포인트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검색을 해 보니 '근위지절간관절'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부위는 태권도를 할 때 배우는 편 주먹 (반 주먹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혹은 밤 주먹 (꿀밤 할 때 그 밤 맞다. 중지에 해당됨)의 끄트머리에 해당되는 부위다. 태권도에서 날카로운 공격의 한 부위로 사용하는 걸 보면 나름 강한 부위로 볼 수도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긴장을 하면 손 끝의 손톱을 물어뜯지만, 나의 경우에는 동그랗게 손가락을 말아 탄력 있게 부풀어 오른 살을 물었던 것 같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하고 멋대로 가설을 세워보자면, 마치 큰 개가 터그 놀이를 하듯 질긴 무언가를 질겅였을때 일어나는 공격성의 해소가 아닐까 싶다. 나는 전생에 한 마리 큰 개였는지 생긴 것도 풍산개를 닮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하고 사람이 필요하다. 자타에 대한 공격성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짜증을 표현이나 부족한 자극의 성취를 그렇게 달성한 게 아닐까 싶다. 내가 학대한 손가락은 나의 욕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 유아들의 경우 손가락을 입에 달고 산다. 무엇이든 일단 만져보고 입에 가져다 댄다. 가장 많은 말초 감각신경이 있기도 하지만 가장 섬세하게 움직이기도 하는 신체 기관이기도 한 손가락은 여러모로 인간의 자아를 대변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잔뜩 오므린 손부터 1, 2차 세계대전 엉클 샘의 저돌적인 손가락 까지. 20세기 초 표현주의 작가인 에곤 쉴레의 그림이 그토록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의 그림 속 나체 그림들의 과장된 얼굴과 관절 그리고 손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학부시절 스트릿댄스동아리에 소속된 적이 있는데, 팝핀이라는 장르의 춤을 추는 친구들이 손가락으로 추는 팝핀인 터팅을 연습하고 보여주는 것을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스트릿댄스를 막 접하기도 해서인지 손가락만으로 추는 춤이 어떤 예술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터팅을 접할수록, 느리고 빠르고 유연하고 경직됨을 표현하는 섬세한 움직임들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매우 풍부함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그것이 영상 매체의 화각으로 강조되었을 때 갖는 효과는 매우 컸다. 꼭 춤이 아니더라도 손가락은 일상 속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통로이기도 한 것 같다. 소리가 없을 때면 사람들은 손으로 대화를 하기도 하니 말이다. 어쩌면 인간은 손끝에 실린 의도 혹은 실릴 수밖에 없는 욕구들을 읽도록 진화해 온 것이 아닐까 싶다.

    여기까지 와 보니 손가락이 못생겨질 때까지 질겅이는 나의 버릇이 마치 미처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에 대한 현상인 것처럼 보인다. 손가락이 아니라 마음을 성형해야 하는 것일까? 여하튼 이렇게 손가락은 여러모로 우리의 의도와 욕구를 보이는 것 같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마음에 대한 약속으로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를 채우는 것 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살아가며 가장 약한 손가락인 새끼를 마주 걸고 서로의 약점을 지켜주려고 약속하거나, 가장 튼튼한 손가락인 엄지를 이용해 도장을 찍는다. 모든 사람의 지문이 다 다른 모양이듯, 내 못난 손의 주름 역시도 지나온 삶의 구김이 표현된 하나의 지문이 아닐까? 내 내면이 표현된 작은 일부인 손을 떳떳하게 보이고 인정하는 태도가 정신건강에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내 손에 새겨진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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