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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방과 스튜창작/관찰 (수필) 2021. 4. 6. 22:26
- 빈 방 -
벽에서 벽 까지 세 걸음.
누울 자리보다 조금 더 운이 있다면,
네 걸음도 나올 것이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은,
늦은 밤 간신히 돌아온 뒤
눈을 감은 채 내 던진 옷가지도
하루의 가장자리에 걸쳐 둘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가끔 홀로 뺨이 얼얼할 때,
빈 공간이 주는 정갈함을 위한 소박한 투자나
올바른 삶이라는 승리에 대한 투쟁은
사치같기도 하다.
침대 위에 얕게 깔린 먼지를 덮고,
수치가 바람에 날려
목젖에 걸려 붙지 않도록
느리게 숨을 고른다.
그러다 작은 해 냄
또는 벗을 맞으면
마음에 쌓인 먼지를 닦아 내듯
방을 비운다.
삶에 공간이 적을 수록
어질러지는 속도가 빠른 것은 있지만,
큰 방이든 작은 방이든
빈 방이 되려면
결국 자주 정리를 해 주어야 한다.
- 스튜 -
맑은 물로 태어났지만
살다 보니 브로콜리도 당근도 감자도 고기도 들어왔다.
좋든 싫든 서로 다른 재료들 만큼이나,
다른 감정과 바램들과 지각들은 결국 같은 냄비 안에 있다.
큰 솥이든 작은 솥이든
태우지 않으려면 결국 계속 저어 주어야 한다.
- 빈 방과 스튜 -
저절로 깨끗해지는 방도,
절대로 타지 않는 스튜도,
이미 완성된 사람도 없다.'창작 > 관찰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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