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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취에 관하여
    창작/관찰 (수필) 2022. 11. 1. 20:14

    군대에 있을 때 나는 이발병이었다. 당시 만나던 연인을 만나기 위해서, 부대원들의 머리를 밀어주며 분기에 하루정도의 휴가를 모으고자 자원한, 추가적인 봉사활동이었다. 비록 그 휴가를 원하던 곳에 쓰지는 못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작업이 좋았다. 이발소 건물은 건물이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벽돌을 대충 쌓아 올려 만든 큐브에 비닐로 된 창문과 판자로 된 엉성한 문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머리카락이 몸에 달라붙는게 싫어서 병사들은 웃통을 벗은 채로 머리를 깎는데, 한겨울 어느날 밖에 내린 눈 처럼 하얀 커트포를 펼쳐 얹으면, 그들은 눈밭에 구르는 것 처럼 몸서리를 쳤다. 어스름한 형광등이 비추는 공간에서 머리를 깎다 보면, 휴가를 앞둔 설렘, 이별에 대한 아픔, 사회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 혹은 그리움 등이 하얀 입김과 함께 오갔다. 지금도 그곳에서는 검게 흩어지는 머리카락들로 쓰여지는 이야기가 가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손재주가 좋았던 나는 육군 병장이 되었어도 부탁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몸은 고되어도 터놓고 오가는 진솔함이 좋았기에, 못이기는 척 건네는 라면을 받아 들었다. 돌이켜보면 세상에 그렇게 깊이 닻을 내린 적이 많지 않은 것 같다.

    2011년 2월에 제대를 했으니까 약 9년이 지난 시점에 코로나가 왔을 때, 답답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좋았던 부분이 있었다. 집에서 삼삼오오 술을 마시며 끝까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루틴하지 않았던, 그러니까 골동품 마냥 감쳐두었던 것들을 꺼내오게 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알코올이 변연계를 무디게 만들면 스스로와 맞설 용기가 생겨 '무엇이 두렵다 무엇을 원한다' 말할 수 있게 된다. 모든걸 내려놓게되는 군인과 취객이 뱉는 이야기가 비슷한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누군가의 다양한 감정의 요철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가 흘러가는 방향을 알 수 있게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포와 욕망은 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두개의 바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도달하지 않은 고통과 행복은 사람을 도망치게 하거나 좇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은 내게 이롭다. 그들이 어디로 갈 지 알고 있으면, 외로움이라는 두려움을 피해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주고 받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러니깐 달리 말 하자면, 더 많은 유대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긴 가방끈은 거꾸로 나를 인생의 늦깎이 학생으로 만들어 버린 듯 하다. 서른 셋이 되어서야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친구들은 사회적인 성장 외에도, 각자 인생의 욕구들과 정면승부를 상당히 마친 상태였다. 다들 어른이 되어버렸다. 당연하다는 듯 20대의 숙제를 다 마치고 다음 과목으로 진급했다. 그와 달리 못다한 미해결 과제는 내가 가장 많다, 학교는 제일 오래 다녔는데.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가 찾아왔다. 밀주를 빚는 지하 수도원 마냥 알음알음 홈파티가 열렸다. 뭐 스무살때도 술을 잘 마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술을 꺾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비겁한 행위라고 생각했고 매번 가방을 잃어버린 채로 병점역에서 굴러다닌 적이 여러번이었다. 20대 후반부터는 필름이 나간적이 많지 않은데 술자리가 잦아 들었기 때문이 아니고 내가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 그렇지만 딱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하튼 유독 아끼는 사람들과 홈파티를 하면 필름이 나가 쓰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아끼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그 광경을 보면 눈물이 나기도 한다. 이는 내가 7년을 갇혀있었던 탓이었거나 아니면 다시끔 느끼는 소속감 같은 것이 반가워서 였을 것이다.

    그런 파티일 수록 끝난 뒤 찾아오는 숙취가 상당했다. 마치 반가웠던 마음으로 가불받은 행복을 고통으로 갚는 듯 하다. 충성을 다한답시고 술을 마시면, 커진 덩치라 민폐가 되는 걸 안다. 왠만하면 자제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종종 어린 개가 되거나 또는 개가 된다. 미안한 마음은 외로움보다도 더 큰 숙취다. 후회한다.

    근거가 없이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은 5살 때 부터 나를 대안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런 바람이, 내 진로를 과학자 또는 공학자로 정하게 된 이유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어쩌면 내가 글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 역시도 사실 못다한 유대의 그림자 같은게 아닐까? 몸만큼이나 비대해진 자아로 타인이 견뎌내고 있는 외로움이 나의 그것 보다 가볍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헛헛할 때 혹은 힘든 일이 있는 주기가 오면, 방이 엉망이다.
    소화시키지 못한것들은 진즉에 다 토해 냈는데도 헛구역질을 하다가 벽에 기대 호흡을 진정시켰다.
    최대한 천천히, 바닥에 가득한 옷무더기를 치운다.

    '불안과 외로움의 폐기물 같은것이 되지 않겠다.'며 논문을 뒤져보고, '책임, 순리, 거리'같은 단어들을 새겨본다.
    내 글이 노출증 같은 것은 아닌지, 그런거라면 읽어달라고 들이미는 것이 얼마나 큰 실례인가.
    누군가를 챙겨주질 못할 망정 짐은 되지 말아야지.

    +

    하고싶지 않은 일을 하는것에 장애에 가까운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다.
    그렇지만 방에 물건을 막무가내로 쌓아두는 것이 성인 ADHD의 한 발현일 수도 있다고 한다.

    (저장강박증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22090201839)
    전두엽은 자제력 뿐 아니라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행동제어와 영양소 https://pubmed.ncbi.nlm.nih.gov/34303786/
    기타 요인? http://journal.kisep.com/pdf/002/2006/002200601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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