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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에 갇힌 말의 해방 (짧은 생각)
    창작/관찰 (수필) 2022. 11. 7. 01:47

    세상엔 색맹인 사람이 있다.
    신호등이 밝아졌다 혹은 어두워졌다 외에는 알기가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마창가지로 강아지들은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만 볼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들의 세상에 붉은 색이란 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분명 붉은 색은 존재한다. 말을 할 줄 아는 강아지들의 세계에서, 우연히 붉은 색의 존재를 알게 된 강아지가 붉꽃의 색을 묘사한다고 가정해보자.

    말이라는 것은 보통 이미 경험되고 증명된 것들을 지칭하는 명확한 정의와 지칭단어들로 구성되어있다. 이런 경우 언급된 적 없는 것을 어떻게 언급해야할까? 깨달은 강아지는 파란색에서 초록색으로의 변화와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의 변화를 병치한 뒤, 그리고 노란색 다음의 단계가 또 존재함을 역설할 것이다.

    그것이 알려져 있던 무언가가 아니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어서 마땅한 단어가 없을 경우에는 그것들을 전달하기 위한 마땅한 단어가 없을 것이다. 수집된 것들로 모아지는 인과/상관 관계를 통해 패턴을 인식하여 예측하거나, 유사한 경험을 전달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어느 방법이든 각 단어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나 힘 따위를 이용해 풀이 과정을 보여주거나 일정한 제한을 바탕으로 재현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도 우리는 상상력을 통해 지식과 경험의 외연을 넓힌다. 우리에게는  당구공 대신에 양 주먹을 사용해도 그 두가지의 관계가 당구공의 움직임과 유사했음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게 선택된 feature들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탑재되어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시(詩) 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 혹은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의 정수를, 언어가 가진 동력(動力)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이뤄낸 균형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초행길을 걷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는 것을 비추어 보았을 때, 사람이란 으레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들여다보지 않기 마련이니까, 일종의 변증법을 이용해 '언어가 가진 보편성에 갇힌 메세지와 경험의 본질을 전달하기 위해' 약속된 틀을 파괴하는 것이 아닐까? 뻔한 것들로 환원하여 결말로 치닫고 싶은 독자들의 본능은 지엽적인 정보와 미완성 된 문장들을 만나면서 시라는 경험으로 완성되는게 아닐까?

    소설과 수필 역시, 
    독자의 관심을 낚는 흥미로운 도입부
    빈 자리의 주변부를 구성하는 것들 (이를 테면 주어지는 갈등과 힌트들) 로 완성되는 빈 자리
    마지막으로 독자의 추리 또는 유사 경험들을 통해 메세지의 소통이 이루어 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인류는 문맹으로 태어난다.
    삶의 본질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문맥과 타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말은 구조적 관계로서만 본질의 국소한 측면 만을 드러낼 뿐이다.
    어떤 감상평도 그림을 대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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