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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흡 1/2, (입원기) -221208
    창작/관찰 (수필) 2022. 12. 8. 23:40
    원인을 모르겠어요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병원을 총 4군데를 갔다. 내가 있는 작은 동네의 두 병원 부터, 강남 한 가운데에 있는 병원, 그리고 대학병원의 응급실까지. 가장 대단할 것 같던 강남의 내과는 유독 채혈을 못했다. 열과 오한과 통증 외에는 증상이 없으니 피를 뽑기로 했지만, 한시간 동안 간호사들은 돌아가며 양 팔을 제각각 서너번씩 쑤셨는데도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다. 주사로 해열제를 맞아도 열은 38.3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보통은 고열에는 따라오는 증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호흡기가 감염이 됐거나 소화기가 감염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기침을 하건 설사를 하건 신체가 대응하면서 열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시간이 갈 수록 증상이 심해지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닙니다. 비록 간의 문제인지 피검사를 하지 못해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밤이 지나도록 열이 날 경우 꼭 응급실에 가야한다는 것 입니다.”

    그래도 의사는 의사였다. 그녀의 조언은 앞으로 있을 추리에 분명 도움이 되었다. 이 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러나 평소 같은 평일이었다면 여기저기 멍든 팔로 캐리어를 끌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열제를 먹고 또 맞았는데도 39도를 넘나드는 것을 확인하고는 불현듯 지난 2월에 코로나 바이러스 델타 변이(두통과 근육통이 대단했기에 그렇게 짐작한다.)에 걸렸던 것이 생각 났다. 당시에 체온이 39도정도 였는데 현기증에 바닥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던 기억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대로 무언가 더 할 수는 없겠다.

    “(…) 제주항공이죠? 제가 오늘 오사카 행 비행기를 타기로 했었는데요, 어제부터 갑자기 고열이 나서 아무래도 비행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코로나와 함께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꿈꾸던 많은 것들을 유보했었다. 가격이 두렵지 않은 식사,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안정적인 연애, 그리고 해외여행 같은 것들…. 그러던 중, 입사한 뒤 3년만에 처음으로 계획한 해외여행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출국일 전날부터 심한 몸살이 시작된 것이다.

    본가에 짐을 대충 풀고 누웠다. 서서 올 때만 해도 괜찮은 것 같더니 해열진통제를 먹고 누웠는데 열/오한/두통/근육통 그리고 엄청 빠른 심박까지 도저히 안정을 취할수가 없었다. 다행히 집 근처에는 대학병원이 하나 있다. 택시를 타고 가서 응급실에 도착한 뒤, 증상을 설명하고 받은 진단 내역과 소견서를 제출했다.



    많은 검사를 했다. 앞서 강남의 내과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사실 나는 혈관이 매우 얇은 편이라 항상 손등에서 피를 뽑는다. (보통 세번정도에는 채혈에 성공한다.) 대학 병원은 확실히 능력이 남 달랐다. 한번에 채혈에 성공을 한 간호사 분께 ‘선생님이 제 명의에요’ 라며 거듭 감사를 표했다. 피를 대략 열 다섯 통 정도는 뽑아 간 것 같았다. 서너시간 정도의 대기를 한 뒤 응급의학과 교수를 대면해 결과를 들었는데, 대부분 정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수치 정상, 소변에 문제 없음, 프로칼시토닌 염증수치 정상, 말라리아나 쯔쯔 가무시 병 인자 검사 정상, 갑상선 검사 추후 확인 예정, 코로나 음성, 심장 콩팥 간 수치 정상, 뇌 CT –뇌 출혈 뇌 종양 여부 확인-) 정상…’

    의도치 않게 다양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그 와중에 여러 검사들이 정상이라는 이야기들에 기분이 좋았다. 의사는 이상한 수치가 단 하나인데 (CRP 염증수치가 정상인 5 대비 66) 그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다. 폐가 엑스레이에서 조금 하얗게 보여서 무기폐(공기가 없는 폐)일 확률이 있으나 호흡기 증상이 전혀 없어서 역시 이것이 현 상황의 원인인지는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이 정도로 기타 증상 없이 열이 나면 뇌수막염일 수 있어요. 잠복기가 10년까지도 되기 때문에 군 생활 중에 걸렸을 수도 있고요. 척수액을 뽑아서 진단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의사는 처음 권했던 검사를 다시 권했지만, 나는 척추에 구멍을 뚫는 다는 것이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며칠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하신 균 배양 검사들의 결과를 확인하고 경우의 수를 거른 뒤에 받겠다.'고 말하며 슬금슬금 무마했다. 먹는 해열제보다 링겔로 맞는 해열제가 더 강력했는지 그래도 서 있을 수 있을 정도의 통증이 되었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친구 중 전문의가 된 녀석이 있어 상황을 설명했다. ‘무기폐라면 심호흡으로도 해결이 가능하다.’ 는 조언을 듣고 심호흡을 했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살짝 하얗게 보인다던 왼쪽 폐에서 미세하게 바글바글 끓는 감각이 느껴졌다. 아프기도 하고 해서 호흡이 얕은거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호흡기 증상이 하나도 없었기에 심호흡 해 볼 일이 없었다. ‘폐 거품소리’ 라는 검색어로 찾아보니 이것은 폐 부종 혹은 폐암의 증상이라는 결과가 나와 있었다. 이런 소리를 Crackle이라고 하는데 낮은 주파수를 coarse, 높은 주파수를 fine이라고 칭하며 후자가 더욱 심각한 폐질환이라고 했다.

    그 길로 다시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서 흉부 CT를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다시 얇은 내 혈관에 링겔을 꼽고 두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마침내 폐에 허옇게 염증이 장악한 곳을 발견했다. 만세!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제거해 가는 과정이 마치 추리극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는 환자들이 제일 늦게 낫는다던데, 순 거짓말이다. 나는 실험실의 시편이자 연구자였다. 누구든 아프면 최선을 다해 엄살을 떨어야 한다. 생각보다 별게 아니지 않을 수 있다.





    마침내 문제가 발생한 곳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곧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 자신에게 청진기를 대고 직접 들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느껴지는 감각은 주파수가 높았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무엇 때문에 생긴 폐렴인지 모른다. 염증의 형태로 확인된 것이 다른 섬유화나 더 심각한 무엇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나를 확인하러 야밤에 회진을 온 의사는 최소한 1주는 입원할거라고 언질을 주었다. 컴컴한 병실 속 보글거리는 얕은 숨을 쉬는 나는 마치 물 속으로 가라 앉는 것 같았다.

    '숨 쉬는 게 공짜가 아니었다니...'
    나는 수면 위가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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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량 호흡 조절 실패로 2/2는 추후에 올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는 11월 셋째주에 퇴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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