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호흡 2/2, (퇴원기) 221225
    창작/관찰 (수필) 2022. 12. 26. 00:00
    https://seowlite.tistory.com/83 에 이어서..

    긴 하루를 보낸 뒤에도 며칠 간 고열은 계속 됐다. 다만 지속적으로 처음과 같이 39도에 육박하는 고열까지는 발생하지 않았고, 나는 내 힘으로 병원 지하 1층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제로 콜라와 김밥 정도는 사 올 수 있게 됐다. 혈관을 통해 항생제를 넣어서 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심호흡을 시도하면 빡빡한 느낌이 들어 마치 누군가가 나를 밟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아무것도 시도하고 있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감사해야하나? 하는 갈 곳 없는 원망도 조금 있었다. 옅은 대야에 담긴 물고기 처럼 최대한 초점 없는 눈으로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고자 노력했다.

    월요일 아침이 되었고, 새벽부터 지시 받은 대로 엑스레이와 피 검사를 받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 와중에도 식욕은 왕성해서 아침을 뚝딱 해치웠고, 커튼 너머로 환자가 바뀌는 과정을 엿들었다. 머지않아 전공의(레지던트) 혹은 전임의(펠로우)로 보이는 의사 한 분이 찾아와 나를 체크한 뒤, 몇 시간 안에 담당 과 교수가 와서 회진을 돌 것이라는 것을 알렸다. 어떠한 질문을 해야 할지 많이 생각해보았지만, 결국 처음 입원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좁혀 나가는 과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추가로 진행한 검사들에 대한 데이터의 추이와, 예상되는 원인,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절차들과 예상 기간을 질문하기로 마음 먹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회진은 정신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담당 교수는 나의 질문들에, "CT와 달리 엑스레이로 찍은 폐는 해상도가 높지 않지만 염증은 줄어드는 것으로 보이고, 측정 되는 염증 수치는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또한 "아직 균/바이러스를 양생 하고 증폭 시켜 분석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해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하지는 않았지만 원인은 그 후에도 알 수 없을 수도 있다. 환자 분께서 요청하시니 그래도 현 시점에서 추측해보자면, 바이러스가 원인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지금의 임상 조치가 유효하니 처치는 동일하게 진행될 것이며, 퇴원의 시기는 완치가 아닌 항생제의 경구 투여가 혈관 투여와 동일한 효과를 보이는 시점이 될 것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병원이 오히려 원인 미상의 폐렴을 가진 환자에게는 좋지 않을 수 있고, 거꾸로 내가 다른 환자들에게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희망이 보였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느껴지는 답변들이었다. 명확한 병명을 모른다는 것은 참 두려운 일이었다. 아프게 된 과정이 너무 급박했기에 언제든 불현듯 안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기저 요인이 세력을 넓히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데이터를 중립적으로 바라보고 차근차근 경우의 수를 좁히는 과정이 과학적이어서 좋았다. "의사들도 결국 신이 아닌 데이터를 관찰하는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한 규칙에 충실한 모습에 되려 신뢰가 갔다.

    이후의 일은 처음 질문에서 들은 대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일 피 검사를 받았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나는 혈관 투여 기간과 경구 투여 기간 동안 성실히 그래프의 점들을 하루에 하나씩 찍어 갔다. 이후 퇴원한 주의 토요일에 고해상도 폐 CT를 한 번 더 촬영한 뒤 그것을 담당 과 교수와 함께 보며 면담을 진행했다.

    "PCR과 균 양생 테스트 결과 결국 명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사실 폐렴 환자 중 100명 중 절반은 원인균/바이러스가 나오지 않으며, 독감이랑 코로나 외에는 바이러스 치료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염증의 형태가 반듯한 구형인 것이 아데노바이러스와 유사해 보인다. 보통 군인같이 집단 생활을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이지만 그렇다기엔 주변에 동일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고, 해당 바이러스가 PCR에서 동정(同定, Identification)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게 원인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도 없다. 코로나 검사 역시 수차례 음성이 나왔지만,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밀접 접촉이 원인이 아니라고 완전히 단정 지을 수도 없다." 라는 답변을 들었다.

    다음 추가 확인용 CT 일정을 조율한 뒤 나는 병원을 나섰다. 고작 한 주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8~9도 정도 되던 기온이 갑자기 거의 영점에 가까워졌다. 찬 공기를 갈비 뼈 아래 끝까지 잔뜩 들이 마셨다.

    더이상 보글거리는 소리는 없었다.
    대야 속 물고기와 다시 만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

    숨쉬기

    '창작 > 관찰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머리카락 230122  (1) 2023.01.22
    신경 -20230108  (0) 2023.01.08
    호흡 1/2, (입원기) -221208  (1) 2022.12.08
    시선(수필) 221127  (0) 2022.11.28
    말에 갇힌 말의 해방 (짧은 생각)  (1) 2022.11.07

    댓글

Copyright, 독수리부엉,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