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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관찰 (수필) 2022. 11. 28. 02:59

    누구나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맞이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할 일이 많은 월요일이 다가오기 전 날 밤에 아침을 대비해 군장을 챙기듯 여분의 잠을 포획하려 하거나, 간혹 할 일이 없는 초저녁에 심드렁 하게 침상에 눕거나, 낮 내내 게으른 시간을 즐기다가 다급히 맞이하는 저녁이 있기도 하다. 잠이 나를 밀어붙이지 않고 되려 내가 잠을 쫓는 밤이면, 익숙하던 공간이나 나의 육체도 낯설게 느껴진다. 조용한 침실에서 몸에 힘을 뺀 채로 눈을 감고 있으면 딱 내 몸 만큼의 공간이 나에게 허락되어 그 안에 내가 담겨있는 혹은 갇혀있는듯 한 생각이 든다. 두려운 감정이 들어 불을 켜면 스스로가 물에 넣은 티백처럼 존재가 확장이 되는 기분이 든다. 정확히 내 시선이 닿는 곳 만큼의 영역을 나는 이해하고 있고 예측할 수 있으며 움직일 수 있는 듯 하다. 나는 그 공간 만큼 확장이 되는 것이다.

    최근 크게 폐렴을 앓아 입원을 했다. 고열과 두통에 지쳐 낮 내내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눈을 감은 채로 홀로 깨어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 여러 밤이었다. 얕아진 호흡 탓에 높아진 심박수가 마음을 더 다급하게 하는 듯 했다. 침착함을 유지하고자 이미 내가 갖고 있는 것 이를테면 몸이 차지하고있는 용적 등에 더 기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두운 밤의 밀폐된 시야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나’ 에게서 시작되는 불필요한 상상의 심지가 되기 충분했다. 기관지 증상도 소화기 증상도 없이 CT 와 고열과 통증으로만 확인되는 폐렴에서 촉발되는 불필요한 상상과 대치하는 감각은 마치 돼지저금통 안을 꽉꽉 채우는 무거운 동전들 같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통증이 느껴진 지는 12일이 지난 시점이고, 입원을 한 지는 대강 8~9일정도가 지난 시점이다. 다행히도 어제 외래에서의 혈액검사에서는 염증수치가 1/10로 줄었고 통증이 가신 뒤에도 남아있던 현기증도 이제는 없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단 1~3도의 온도가 다시 내려갔을 뿐임에도, 통증, 맥박, 가쁜 호흡에 갇혀있던 나는, 빛과 시선을 따라 널직한 공간에 고이 퍼졌다.

    하지만 ‘본다’는 것은 사실은 굉장히 많은 왜곡을 가지고 있고 인위적인 참여가 수반되는 행동이다.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은 인지에 깃든 의도가 존재함을, 모델링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오류가 존재함을 알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눈에 들어온 정보가 뇌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수십밀리초, 이를 기반으로 어떤 조처를 내리는 데는 약 120밀리초(0.12초)가 걸린다. 합치면 대략 150밀리초(0.15초) 안팎이다. 공의 속도가 시속 100km가 넘는 테니스, 야구 같은 종목의 경기에선 이 짧은 시간 동안 공이 3미터 이상 날아갈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눈만 믿고 있다가는 공을 정확하게 잡거나 칠 수 없다. – 출처: 2020년 4월의 기사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941585.html

    공의 궤적을 실제로는 볼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공의 궤적을 ‘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뇌’가 공을 본다. 비어있는 frame을 일종의 시뮬레이션으로 채워 넣는 것이다. 데이비드 이글먼의 ‘더 브레인’ 이라는 책의 72~74 page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시각 정보는 눈에서 가쪽 슬상핵(시상의 시각 담당 구역)을 거쳐 피질로 이동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반대방향으로 정보를 되먹이는(피드백하는) 연결선들이 10배나 많다. 즉, 뇌는 눈을 비롯한 감각기관들로부터 정보를 받기 전부터 나름의 실재를 산출해 놓고 있다. 이를 '내부 모형internal model'이라 한다. 시상은 단지 눈이 알려주는 바와 뇌의 내부 모형 사이의 차이만 보고한다. 심지어 외부 데이터로부터 격리되어 있을 때에도 뇌는 계속해서 나름의 광경들을 산출한다. 세계가 없어도, 쇼는 계속된다. 세계에 관한 상세한 예측들, 다시 말해 외부 세계가 있으리라고 뇌가 ‘짐작하는’ 바는 시각 피질에 의해 시상으로 전달된다. 그러면 시상은 그 예측들을 눈에서 오는 정보들과 비교한다. 만일 예측(내가 고개를 돌리면 의자가 보일 것이다)과 정도가 일치하면, 시각 시스템으로 되돌아가는 신호는 매우 적게 발생한다. 시상은 단지 눈이 알려주는 바와 뇌의 내부 모형 사이의 차이만 보고 한다. 바꿔 말해 시각 피질로 되돌아가는 신호의 내용은 뇌가 예상한 바의 결함(오류로도 불림), 곧 뇌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요컨대 어느 순간이든 우리의 시각 경험은 눈으로 들어오는 빛보다 머릿속에 이미 있는 것에 더 많이 의존한다.”

    결국 우리는 ‘눈이 있어도 (모형 이상의 것을 쉽게) 보지 못한다.’ 는 말에 어느정도 일리가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라는 시구도 어쩌면 인지가 의도에 크게 제한된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최근 어린이의 근시가 햇빛을 적게 보는 게 원인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16071901918

    "햇빛이 근시에 영향을 미치는 원리는 도파민으로 설명되고 있다. 햇빛이 시신경을 통해 눈 속으로 들어가면 망막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낮에 많이, 밤에 적게 분비되면서 안구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도록 만든다.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도파민의 분비 리듬이 교란되면서 안구가 비정상적으로 자라 근시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거꾸로 영유아기 때 수면 중에 빛에 노출 되면 근시가 오기도 한다고 한다. (Nature 399, 113–114 (1999) https://www.nature.com/articles/20094) 근시가 무엇인가? 근시는 멀리있는것은 잘 안보이고 가까이 있는것은 보이는 것이다.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우듯 인체의 눈은 수정체를 모양체근이 조율하여 망막에 상이 맺히게 한다. 안구의 길이 혹은 수정체/모양체근의 기능이상에 의해 근시는 발생한다.

    출처: https://www.msdmanuals.com/ko/%ED%99%88/%EB%88%88-%EC%9E%A5%EC%95%A0/%EA%B5%B4%EC%A0%88-%EC%9E%A5%EC%95%A0/%EA%B5%B4%EC%A0%88-%EC%9E%A5%EC%95%A0-%EA%B0%9C%EC%9A%94



    이렇듯 우리의 안구도 일종의 렌즈이다. 렌즈에 의해 상이 모이는 깊이를 Focal length 즉 초점 거리라고 한다. 종종 focal length대신 화각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이는 카메라의 직경이 상수이고 렌즈의 곡률이 변수일때 많이 사용된다. (focal length에 따른 얼굴의 변화를 보여주는 재밌는 gif파일이 다음 링크에 있다. 흔히 말하는 얼짱각도 혹은 연예인 얼굴이 실물은 더 작다는 표현은 렌즈의 화각 혹은 초점거리에 의한 인지 차이에서 비롯된다. https://lenswork.tistory.com/915) 이 초점 거리에 따라 얼굴이 어안렌즈로 본것처럼 뾰족하게 혹은 망원렌즈로 본 것 처럼 평평하게 나오기도 한다. 사람의 눈은 수정체로만 보면 22mm의 초점거리를 갖는다. 하지만 카메라와 달리 인체의 망막에는 곡률이 존재하기에 이를 환산하면 대강 43mm라고 한다. (https://www.cambridgeincolour.com/tutorials/cameras-vs-human-eye.htm) 그래서 사진가들 사이에서는 이를 어림한 50mm 렌즈가 사람의 시야와 가장 유사한 초점거리를 갖는 렌즈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보았을 때, 우리의 눈은 이미 어느정도 왜곡(굴절)된 시야를 갖는다. 그뿐 아니라 그 상(像)은 타고난 안구의 크기, 성장기 때 노출된 빛의 양, 그리고 모양체근의 활성화 정도 등에 의해 추가로 왜곡된다.

    또한 식상할 정도로 널리 알려져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인간은 ‘가시광선’의 빛의 파장 만을 볼 수 있다. 반면, 인류의 가장 첨단의 눈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작년에 쏘아 올려졌다.)은 기본적으로 주황색 정도의 가시광선으로부터 근적외선~적외선의 넓은 파장 영역을 기반으로 우주를 관찰한다. 우주망원경은, 분명 실존하지만 육안으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세계, 예를 들면 100억광년 거리의 적색거성인 quyller의 미지근하고 보이지 않는 빛을 번역하여 가시광선의 영역으로 해설한다.


    https://youtu.be/DbgVExczLsc (우주먼지의 현자타임즈: 천문학 유튜브 채널로 사랑하고 아끼는 후배이자 존경하는 과학자인 지인이 운영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것들을 돌아보았을 때, 어두운 방 안에서 그 공간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한 인간이 더 작은 공간에 가두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본다’라는 것 자체엔 기본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오류와 한계가 있다. 눈앞의 현상에 낙담하지 않고 인지를 보정하는 등의 올바른 내부 모형을 가지고자 하는 지향과 실천이 실재를 인지하는 것에 가까워지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게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밀폐감의 대척점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모른다고 해서 내가 당장 볼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거나 부재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더 깊고 자세한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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