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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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배창작/시 2022. 7. 11. 23:55
오징어배 220711 웃통의 둘레와 거죽의 성분이 정교하고 징 꽹과리들 죄 몰려와 천둥인 척 한창인 가운데 큰 일이다 검은 물 건너 오징어가 잡히지 않는 것이 깨진 조개처럼 풍악이 따가워도 벼락을 꾹 문 입은 곧 곧게 뻗은 선 부단히 먹고 먹이는 일 까슬한 껍질 속엔 수면과 대결하는 시선이 있다 번뜩이는 오징어 배에 홀려 뭍과 물을 휘적이는 발은 한 마리 오징어이기도 한 명의 어부이기도 하다 수평선을 큰 버거처럼 꾹 베어 문다 입안으로 말아넣은 입술 아래 더글더글 끓는 꼴뚜기 떼 고통과 행복을 가닥 가닥 솎는다 멈춘 숨 피어나는 벼락을 낚으려는 양 촘촘히 그물을 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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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2-'선한 고양이는 없다'창작/소설 2022. 6. 22. 14:35
영화 을 보고 희한한 일이었다. 학교가 끝난 뒤 철수는 아파트 단지의 낡은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6교시가 끝난 뒤 오후 세시가 될 무렵이면 친구들은 다 학원에 간다. 그곳에서 조용히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는 힘든 사람이야' 철수는 언제나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바로 말해본 적이 없다. 재작년 여름쯤 이었다. "그 아이스크림은 너무 비쌌어요. 무려 700원이에요" 철수가 그의 외숙모에게 했던 말이었다. 철수는 당연히 칭찬을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외숙모는 크게 놀랐다. 눈이 커지며 고개를 뒤로 움츠려 빼는 모습이 철수는 놀란 자라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부터 였을까 '우리 철수는 착해서 너희 엄마는 걱정이 없겠다'던 말을 철수는 들은 적이 없다. 그만큼 철수는 착한 아이였다. 철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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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1-'개와 사람의 관계에 대한 독백'창작/소설 2022. 6. 22. 13:47
영화 를 보고 너는 동물을 사랑했다. 동물을 괴롭히고 멸종시키는 인간이 차라리 멸종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네가 사랑이라 하는 것이 정말로 동물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네 시선이 돌아서는 곳에서 다른 문장을 본다. 경기도 어딘가 버스를 타고 한참 가면 어둑해질 무렵의 벚꽃이 폴폴거리는 교정이 나왔다. 나무 아래는 새카맣게 어두워도 하늘은 달빛에 하얗게 빛났다. 꽃잎들이 하얗게 부숴지고 흩어지면, 학생들은 설레여 잠들지 못했고 그 중에는 우리도 있었다. 노천광장에는 들떠서 왕왕 섞이는 말소리들이 가득했다. 어둠은 서로의 표정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만 딱 적당했다. 그때 흩어지듯 말해준 이야기엔, 흐릿했지만 분명, 발에 채이고 도망치며 죽어가던 너의 강아지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네가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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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창작/관찰 (수필) 2022. 4. 17. 12:39
공감은 대체로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이해 없이는 안면 근육을 일그러뜨리는 연기일 뿐이고, 이해하더라도 상대방의 감정을 방해로 여기면 서로 연결되기 어렵다. 서로의 감정을 함께 느끼고 주고 받는 것. 이것이 공감이고 또한 단순한 정보전달을 넘어서는 고차원적인 소통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다양하지만 사람들은 고통을 피하고 싶어한다. 때문에 대체로 공감능력이라 함은 상대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때 그곳에 함께 있는 것. 그래서 공감은 희생이라는 단어와 병치해도 어색할 것이 없다. 이런걸 왜할까? 훗날에 돌려받고자 하는 심리도 있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탄하고 적막한 맨션에 홀로 있는 것 보다 구렁텅이라도 함께 하는 사랑을 지향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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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창작/관찰 (수필) 2022. 3. 19. 23:08
재회 220319 사랑하는 사람들과 취할 때면 오랜 방황 중에 우연히 집을 찾은 마냥 울음이 턱까지 차 뻐근하다. 뭐가 좋았고 싫었고 힘들고 쉬웠노라 하면 짹짹거리는 소리에 방이 가득 환하다.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운다. 그래도 오늘 하루 만큼은 너희를 봤으니 좋은 날이었다 말할수 있다. 무릇 모르는 이가 꾀어내듯 걸쳐 둔 매력에 낚아 채이듯 목을 메면 어딘지도 모르는 그 광활한 세계에서 길을 잃다가 '나는 너를 초청한 적 없다'며 내쫓기기 일수다. 아침 졸음에 미적이듯 익숙하고 그리운 사람들에게 기대는 것은 비정한 당신의 세계보다 따뜻하리라는 기대가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