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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은 잘 안 바뀐다. '이야기의 탄생'을 읽고
    심리학 2021. 4. 18. 19:40

     

    윌 스토 지음 @흐름출판

     

    요새는 묘연해지고 있지만, 좋은 SF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공학관련 학위가 있고, 특정한 내용이나 복잡한 얼개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니 두개를 엮어보면 어떨까하는 간단한 동기에서였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발견한 이 책의 제목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제목 뿐 아니라 구성 면에서도 이 책은 상당히 훌륭했다. 이 책은 명서의 조건을 사례들을 모아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기준으로 엮어 냈다. 또한 책의 홍보글에서 언급하듯이 '과학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증명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책의 중간 중간마다 인간의 인지가 얼마나 편향되어있으며 언제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과학적 실험들을 예시로 든다.

    이러한 이유들로, (나의 개인적 동기와 짜임새의 독창성과 효율성) 나는 이 책을 전부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생각보다 사랑받는 소설을 쓰는 것은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함을 일러주었다. 

    이야기에 관련된 책이지만 생각보다 이 책은 재미있지가 않다.
    딱딱하고 분석적이며 건조한 어체로 되어있다. 마치 TV 개그 프로그램이 왜 재미있는지 저명한 평론가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설명하는 듯 한 느낌이 든다. 때문에 내가 다 읽었다고 생각한 문단을 다시 되짚어보다보면 '이런 내용이 있었나?' 싶은 경우가 많았다. 방금 읽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한 부분들은 특히 소설의 일부를 발췌한 경우에서 많이 발생했는데, 나는 이것이 그만큼 각각의 소설이 갖는 독특한 시각과 시점의 변화가 문단마다 바뀌는 것을 내가 몰입하고 공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점의 변화의 어려움이야 말로 책에서 여러번 강조한 부분이며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소설가/이야기꾼의 기술이 활약할 기회의 영역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세상은 복잡하고 위험하며 인생과 인지는 유한하다.
    그래서 인간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대응하기 위해,
    근자감을 선택했다.


    책에서 말하듯이, 기본적으로 인간은 '세계 모형'을 만들어 가며 '세상은 이렇다.' 는 식으로 대응 전략을 만들어간다. 당연히 그 모형은 완전히 들어맞지 않지만, 세상은 너무 복잡하며 이러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경우 인간은 두려움에 압도되고 만다. 그러한 두려움의 반작용으로 혹은 타고난 욕망으로 인간은 '세상에 대한 통제력을 갖는 자아'를 너무나 추구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결국 편향된 전략의 다발로 유도되는 자아인 지엽적인 '신경 모형' (아집, 똥고집, 근자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을 형성하고 만다. 징크스를 하나하나 늘려가는 운동선수들 처럼, 세상을 통제할 수 있거나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스스로의 인지를 왜곡한다. 

    이러한 '신경 모형'을 유지하는데는 (자기 자신을 속이고 박박 우기는데는)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든다. 그리고 에너지를 많이 들인 만큼, 이것이 깨지는 순간을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주목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의 기저에서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결함있는 자아'가 결국 어긋나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두려워 한다. 이러한 불일치는 이야기의 전개의 원동력인 긴장감을 부여하며, 이는 독자 혹은 관찰자가 '변화'에 주목하게 한다.

    많은 훌륭한 이야기들은 현실과 자아의 격차가 주는 긴장감을 가지고 시작된다고 책은 말한다. '결함있는 자아'로 시작된 주인공의 에너지 소모가 역설적으로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경우들은 많은 변화를 야기한다. 주인공에게 몰입한 독자들은 주인공의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주인공의 시점과 욕망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주인공의 인격을 입은 채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단순한 설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이야기의 힘이다. 


    훌륭한 소설가는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몰입할 수 있는 도덕적, 합리적 장치를 정교하게 설정하고 그러한 결함과 신경모형에 공감하도록 해야 한다고 책은 말한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좋은 이야기 꾼은 타인의 욕망과 공포의 유래를 이야기하는 심리학자이자 접신이 가능한 무당에 가깝다고 본다.

    사랑받는 소설은 주인공의 변화된 '신경 모형'이 세상과 이루는 극적이고 최종적인 타협에 대한 독자의 기대감/긴장감을 잘 활용한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 (기저의 신경 모형은 잘 안변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미 스스로를 경험함으로써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사건 외적인 갈등 외적인 변화 → 내적인 갈등 →내적인 변화' 라는 과정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지속적인 성장 또는 변화를 제공한다면 독자에게 기대감과 몰입감을 제공할 수 있다. 때문에 훌륭한 서사는 궁극적인 변화를 구성하는 지엽적인 긴장의 고조와 해소의 간격이 알맞게 구성되어있다.


    내가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완전히 기억하고 쓴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의 리뷰와는 달리 책의 단원 제목만 다시 확인해 가며 글을 썼기에 저자의 실제 뉘앙스와는 다른 부분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책을 다 보고 나서 내 머릿속에서 다시 정리된 새로운 세계관을 그대로 글에 담고 싶어서 퇴고는 하지 않았다. 위에작성한 내용을 제외하고도, 그리듯이 인지의 순서대로 쓰기, 다 설명하지 않고 빈 공간으로 독자가 추리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등의 기법도 책에 소개되어있다.

    처음에 이 책을 다 보고 나서, 나는 성선설과 대치되는 것 같은, 인간의 불완전하고 자기편향적이고 이기적인 심상에 실망했었다. 인간은 그렇지 않다고 보기엔, 대대로 그리고 널리 읽히는 서사의 특징이, 사람은 지엽적이고 완고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화 학습을 기반으로 한 기계 학습도 초기에 많은 오류를 가지고 진행이 되는 것 처럼, 자기 확신과 지지를 바탕으로 낸 용기와 행동이 '인류 전체의 신경 모형'을 개선하는 보상이 되는 과정이라고 넓게 바라볼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래서 우리는 (소시오패스/나르시스트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지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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