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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과학을 바라보는 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정-반-합" (에릭 켄델의 '통찰의 시대'를 읽고)심리학 2022. 5. 21. 00:16
뇌과학이 밝혀내는 예술과 무의식의 비밀. 뇌과학의 연구 성과와 자서전이 결합된 책 《기억을 찾아서》로 국내 과학서 시장에 큰 화제를 몰고 왔던 천재 신경과학자 에릭 캔델(2000년에 신경계 의 신호 전달에 대한 발견으로 아르비드 칼손, 폴 그린가드 와 함께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이 인류에게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과학, 예술, 인문학을 넘나들며 파헤치는 책이다. 과학 창의재단에서 주관하는 과학문화 전문인력에 소속된 적이 있다.
그 곳에서 처음 받은 미션은, [과학을 주제로 그러나 예술 작품을 형식으로 표현하라]는 것이었다. 팀 구성은 랜덤으로 구성되었는데, 우리 팀은 2명의 연기자와 1명의 스트릿댄서와 1명의 성악가와 그리고 1명의 랩퍼 (흉내를 내는 과학자)인 나로 구성되어 있었다.과학적인 것이라는 게 관찰자 혹은 학습자의 관심사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서사없는 형태의 딱딱한 암기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과학에 서사를 불어 넣는 것 그리고 개인화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했고, 뮤지컬의 형태로 작품을 구상했고 나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것 보다 구성과 개연성을 추구하는 것은 사회성을 가진 사람들의 보편적인 특성이고 욕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클리셰와 고정관념은 예술의 가장 큰 허들이자 디딤돌이라고 생각해왔다.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확장시키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에 대해서 전문적이고 집중적으로 끝까지 다룰 수 있는 능력과 열정이 나에게는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렇게 까지 방대한 간학문적 관점을 다룰 수 있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해 왔다. 과학적 기술이 아니면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술이라는 것은 그 대척점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까지 예술에 관심이 있는 과학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있었다. 에릭 켄델의 통찰의 시대는 예술과 인지심리학, 생물학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 개괄하는 것을 해 냈다.
책 후반부의 쇼베 동굴에 그려진 말 그림과 자폐를 가진 나디아의 말 그림에 대한 비교과정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구성에 제약되지 않은 상세한 그림은 언어에 제약되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이처럼 언어의 제약을 받지 않던 인류가, 생존을 위해 무리지어 생활하며 언어를 다루고 형이상학적인 것을 논의하기까지는, 성과 공격의 충동성을 뛰어 넘는 사회성을 갖추어 가는 진화과정이 있어왔다고 생각한다. 이는 각 개체간의 대립 외에도 각 개인 안에서 내면의 균형을 이루어가는 양상을 야기했지만, 이는 사회성을 갖춘 인간의 내면에는 본질적으로 다른 충동과 규율 간의 대립이 항상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식 기저에 놓인 욕망과 충동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다소 과감한 형태이지만) 살펴보았으며 1900년대 초반에 정신분석학의 토대를 세웠다.
이러한 1900년대 초반의 정신분석학적인 발견은 당대의 소설가 미술가등의 예술가들의 작품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관능미가 담긴 클림트의 그림, 다소 불쾌하고 불안한 느낌을 주는 실레와 코코슈카의 그림'은 관람자의 감정을 더욱 극도로 끌어올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관람자의 감정까지도 그림을 그릴 때 헤아리는 입체적인 구상을 창조해 내려면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떠한 충동과 불안함을 가지고 있는지 탐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발견과 시도가 당대의 표현주의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아니면 우연히 이러한 발견과 함께 사람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그림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세상을 지각하고 감정을 이입하는지를 명확히 이해한 이 예술가들은 기존의 합리주의적 시각을 넘어서는 새로운 힘을 드러냈다.
책의 후반에는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자각과 인지가 충동에 앞선다는 것을 반박하는 실험 결과를 언급하며 인간 이성에 대한 기존의 맹신에 의문을 제기한다. 지나치게 의식적인 수행에 비해 어느정도 느슨한 수행이 더 나은 결과를 보임과 함께 재능과 창의성에 대한 단서들을 제시한다. 과거의 경험에 기반해 감정이 일어나며, 우리는 왜곡되고 과장되었지만 진실된, 실제 경험의 '증류' (이 표현이 참 좋았다) 인 실재를 예술작품 속에서 경험한다. 이러한 단서들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새로움에 대한)충동이 투쟁의 대상이 아닌 적절한 완급과 순환 속에서 새로운 창조와 기쁨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에 이 책의 독후감 제목을 정-반-합이라고 이름지었다.
우리는 해마를 가진 존재로서, 언제나 새로움에 노출되고 도전하지만 과거를 통해 미래를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다. 무지의 장막에 대항하는 존재로서, 나는 새로움을 대하는 나의 욕망과 충동을 존중하면서도 문제를 향한 시선을 돌리지 않는 규율로 창조적인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한다.또한 기존의 관점(부모분야, parent-discipline)을 비판적인 시각(반 분야, anti-discipline)으로 분석하는 (뇌)과학적인 시각은 객관성과 재연성을 확보하고 기존의 관점을 환원적인 방법으로 보완한다. 때문에 정-반-합은 큰 학문의 흐름에서도 다시 구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스스로와의 대결과 혼돈을 일종의 창조의 근원으로서 인정할 수 있는 용기의 근거를 주는 든든한 거인의 어깨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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