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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정-230204
    창작/관찰 (수필) 2023. 2. 4. 17:50
    연애를 글로 배웠다.

    는 말도 이제는 옛날의 표현이 되어버린 듯 하다. 아이폰이 나오고 모두가 영상을 찍고 또 볼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연애를 글이 아닌 영상으로 배운다. 코로나 혹은 성별 갈등으로 인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간격이 멀어지면서 연애는 어느 정도 사치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수도..?) 문제는 다양해지고 많아지는데, 소통은 더 줄어들었다. 거대하고 위협적인 호랑이나 로랜드 고릴라를 방탄 유리 넘어로 관찰하는 일은 멋진 흥분을 선사한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은 연애가 주는 문제를 피하고 싶어하면서도 안전한 스크린 너머의 애틋한 감정들을 열망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일일히 다 열거하기도 힘들정도로 많은 연애 예능 프로그램들이 있다.

    나는 '하트시그널' 까지는 거부감이 없었다. 누가 봐도 화려한 사람들이 나오는 '솔로지옥'은 너무 현실감이 없고 위화감이 느껴졌고, '나는 SOLO'는 일반인 출연자들의 감정이 너무 날 것 이어서 스트레스가 느껴졌다. '환승연애'는 포맷 자체가 삼각관계여서 상상하는 것 만으로 스트레스가 느껴져 본 적이 없다. 하트시그널은 시즌 4까지 나왔고, 솔로지옥과 환승연애는 시즌 2까지 나왔다. '이별도 리콜이 되나요?' 는 설레는 감정을 주로 다루는 연애프로그램은 아니지만, 해소가 되지 않은 감정과 후회라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가지만, 유튜브 클립에서 어쩌다 한 번 볼 뿐이었다. 때문에 나는 여전히 이러한 영상들에 '빠른 피드백과 많은 조회수'라는 분명한 제작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 배운 연애엔 과장과 연출이 가득하며 왜곡되어있다는 삐딱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연애를 글로 배웠다. 군 복무를 마친 2011년 부터 스마트 폰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급된 것도 그로부터도 1~2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학부 졸업반이 되어서야 스마트 폰을 쓰기 시작했었다. 물론 노트북이 있었지만, 나의 20대와 영상과의 거리는 지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멀 수 밖에 없다. 길어진 혓바닥으로 연애 예능에 대해 투덜거려 보아도, 정작 멋진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최고의 연출가가 되어 예능 속 전략들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내고 기억하고 배려하는 것'은 관계의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 속에서 제공되는 맥락과 해설 그리고 그 반응으로서의 문장과 목소리 그리고 표정은 최고의 예시가 될 수 있다. 그런 자료들을 꼭 TV나 모니터 앞이 아니더라도 스마트 폰과 OTT 서비스를 통해 어디서든 볼 수 있다는 점은 연애에 미숙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교재나 다름이 없다.

    그렇지만 이런 방법이 없었을 때는, 상대방의 마음이 칼같이 돌아서는 일을 쉽게 상상하기 어려워 희망고문을 자처한 적이 많다. 상대의 완곡한 거절 혹은 거리두기를 알아차리지 못한 적도 많았을 것이고, 거꾸로 진심이라는 단어로 배려가 부족함을 변명하려 한 적이 많았을 것이다. 센서가 무디던 때의 진실은 당사자들 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괴로운 짝사랑을 거듭 반복하던 나는, 당시 인기가 많던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다. 물론 정말 잘 생긴 친구였지만 여유롭고 능숙하게 감정을 읽는데에는 나름의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그 친구는 '로맨스 영화를 보라.'는 조언을 주었다.

    당시 본 Before Sunrise, Before Sunset은 아직도 많이 좋아하는 영화다. 물론 이후 보게 된 Before midnight도 그렇다. Eternal Sunshine 역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사랑에 빠지는 이 감정의 모순적인 특징을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추천 받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If only도 당시 봤었는데, 남자의 지속 불가능한 희생이 잔뜩 미화되어 있음에도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다. 비슷한 생각을 LA LA Land의 줄거리에서도 느꼈는데, 각각 다른 방식으로 상대방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이 때로는 대립한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꾸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Her'가 남성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역시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두고 대립하는 요소들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영상과 영화에서는 표정이 참 많고 다양하다. 미묘한 근육의 긴장 차이와 시선의 방향 그리고 0.1초 안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표정들은 재능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알아차리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남성의 상대방의 감정 읽기 능력은 여성에 비해 선천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젠더에 대한 해석이 가능성에 대한 족쇄가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확실히 남자들이 눈치가 없다. (앞으로 쓸 성별에 대한 차이는 그러한 견해와 그러한 견해를 보여주는 일부 연구 사례가 있다 -반박하는 입장과 근거가 존재 가능- 는 정도로만 봐 주었으면 한다.) 남자들은 사춘기 때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 '뭘 쳐다보냐' 는 식으로 싸움이 시작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침팬치도 상대의 눈을 직시하는 것은 도전으로 여겨진다고 한다니 뭔가 비슷한 부류의 적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다. (한국일보 "[애니팩트] 원숭이 세계에서 눈을 마주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도전이다.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8071287075634) 그리고 남고를 나온 20대 초반의 나는 상대방의 표정을 통해 대충 기분이 좋구나 나쁘구나 정도를 낮은 확률로 맞출 수 있는 정도의 해상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미숙함은 관계 형성/유지에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성의 생각이 궁금했던 나는 '그 남자의 뇌 그 여자의 뇌'라는 책을 구매해서 읽었다. 이 책의 저자인 '사이먼 배런코언 (Simon Barron-Cohen, 박사과정 끝 무렵에 냉혹한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 읽은 '공감 제로' 라는 책이, 이 교수의 책이란 걸 알게 된 것은 꽤 훗날의 일이다.)'은 캠브리지 대학의 심리학/실험심리학 교수인데, 자폐를 연구하다 보니 체계화하는 능력과 공감하는 능력 간의 절충 한계점이 존재하는 다수의 경우를 발견하였으며, 이것이 성별과의 높은 상관관계를 가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심지어 태어난지 하루가 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도 아이의 시선을 tracking 해보면 남자 아이들은 모빌을 여자 아이들은 여자의 얼굴 사진을 더 오래 쳐다본 결과가 있다고 한다. ("Sex differences in human neonatal social perception", Infant Behav. Dev., 23 (1) (2000), pp. 113-118, https://doi.org/10.1016/S0163-6383(00)00032-1) 책에서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경우 체계화 하는 능력의 상승과 사회성의 결여가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많은 자폐 아동의 경우 지나치게 활성화된 뇌의 체계화 (능력과 관계되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과 더불어 눈을 마주치고 진행하는 의사소통의 결여 등의 낮은 사회성을 보였다. 테스토스테론을 주입받은 암컷 쥐 역시 낮은 사회성과 높은 체계화 능력을 보였으며, 이 책 이후에도 다른 연구결과들은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성과 체계화 능력의 추이가 단순히 사회적인 영향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Empathy: gender effects in brain and behavior", Neurosci. Biobehav. Rev., 46 (Pt 4) (2014), pp. 604-627 https://doi.org/10.1016/j.neubiorev.2014.09.001)

    도서의 말미에는 다양한 표정의 예시가 나왔고 그 부분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딱 누울 구석만 있는 바닥에 옷이 잔뜩 널부러져 있는 방 처럼, 감정들은 '좋다' 혹은 '나쁘다'로만 구분되었었다. 그랬던 와중에 각각의 미묘한 표정에 추가적인 색인이 달리면서 세세한 감정들을 더 높은 해상도로 볼 수 있게 된 듯 하다. 비슷한 부류의 책으로 '언마스크 (UNMASK!) 얼굴 표정 읽는 기술' 혹은 '나는 너를 책처럼 읽을 수 있어' 같은 제목의 책들을 몇 권 더 읽게 되었다. 각 책 별로 논조나 핵심 내용은 달랐지만, 공통되는 것은 '항상 표정을 관찰하고 기준 상태에서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관찰하라'는 것이었다. 표정을 보는 일이 FBI 수사관이나 연애를 원하는 성인에게만 필요한 일 만은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마스크를 쓴 기간 동안 아동들의 언어 및 정서 발달이 심각하게 저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칼럼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896816&memberNo=1891127)

    나에게 상대방의 표정은 사람과 마음 엿볼 수 있는 귀한 채널이다. 거꾸로 나의 표정은 상대방을 향한 일종의 감정적인 메세지를 전달한다. 분명, 표정은 진심어린 마음의 가교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오빠는 표정에 너무 속 마음이 다 비춰서 너무 부담스러워'라고 말한 옛 여자친구가 이 시점에서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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