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심박수 (230304)
    창작/관찰 (수필) 2023. 3. 4. 05:06

      몸이 무거워진 뒤에는 더더욱 유산소 운동을 즐겨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뛸 수 있는 코스가 있다. 동작역에서 시작해서 반포대교를 건넌 뒤 다시 동작대교를 건너 돌아오면 얼추 5km가 나오는 코스이다. 맑은 날이면 강 건너의 남산타워가 보인다. 반포대교를 향해 뛰다 보면 좌측으로는 세빛섬이 보인다. 반포대교는 2층으로 구성되어있는 교량인데, 아래층은 홍수가 나면 잠기도록 설계한 잠수교이다. 잠수교에 도달할 즈음 만나는 곳은 반포 한강 공원으로, 강가에는 수변무대가 존재하는데,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곳에 사람들이 둘러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으며 아련한 표정으로 강을 바라본다. 그런 표정들은 보기 드문 편이기에, 나는 이 곳을 좋아한다. 만일 4~10월 오후 730~930분이라면 반포대교 2층에서 나오는 무지개 빛 분수를 만날 수도 있는 공간이다. 잠수교에는 중간정도 지점까지 솟아오르는 경사가 있는데, 여기를 지나고 나서는 대체로 평탄한 경사로 건널 수 있다. 동작대교의 북단에 이르면, 계단을 오르거나 혹은 엘레베이터를 이용하여 동작대교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매우 곧게 뻗은 다리를 뛰며 강바람을 맞으면 해 냈다는 감정에 기분이 후련하기도 하고, 또 이렇다 형언하기 모호한 아련한 감정이 올라온다. 그건 아무래도 예전처럼 자주 뛸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또 힘들고 좋았던 추억들이 의식 아래서 진동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혼자 한강 변을 자발적으로 뛰던 기억은 감정적으로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가 기억의 대부분이다. 신촌 근처 서강대학교 건너 편의 대흥동에 살 무렵에 나는 집에서 부터 합정역 근처의 절두산 성지까지 왕복 6km 정도를 뛰어 갔다 오곤 했다. 한 밤중에 불이 꺼진 성당 안에 들어가면, 천주교 신자인데도 등골이 오싹해지곤 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큰 두려움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종교적인 선배(?)들에게 위안을 받고 오면 삶의 도전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조금 더 욕심내서 망원동 쪽으로 뛰면, 큰 배가 전시되어 있는 서울함 공원에도 다녀올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여기서 만난 큰 사모예드를 기억한다.

     혼자서 뛰던 기억들과는 달리 여럿이서 함께 달리던 기억은 대체로 마음은 즐겁고 호흡은 가빴다. 크루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은 대학 동기들에 아끼는 지인 두세명을 더 불러서 모은 모임이었고, 이름도 크루라고 하기는 모호하지만 아무튼 크루라는 의미에서 후루뚜루루꾸꾸루 (Fruit Loop Luke Crew) 라고 붙였었다. 워낙 잘 뛰는 친구들과 함께 달렸기에, 나의 호흡에선 항상 죽기 직전의 두꺼비 같은 소리가 났다. 이 친구들과는 위에 언급한 동작역 코스 외에도, 이촌역이나 당산역 코스를 즐겨 뛰었는데, 이촌역 코스는이촌 한강 공원의 거북선나루터 부터 국회대로 북단까지 왕복으로 달리면 딱 10km가 나왔었고, 당산역 코스는 당산역에서 양화 한강공원의 미니스톱에서 부터 가양대교 남단까지 왕복으로 달리면 딱 10km가 나오는 코스였다.

     당시(2018~2019)에 마음이 떠난 연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한 방법으로 시작한 달리기였지만, 크게 만족할 만한 드라마틱한 체형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역시 1~2주에 한번 뛴다고 뭐 대단한 변화는 없는 건가..’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 그때의 사진을 보면 너무나도 갖고 싶은 슬림함이 보인다. 역시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복기해본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2022 간에는 이 친구들과 매년 참가하던 10km 달리기 대회를 참여하지 못했다. 항상 같이 달리던 친구의 권유로 4월 말에 열리는 10km 달리기 대회를 신청하게 되었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는 다시 10km 달리기를 1시간 안에 주파할 수 있을까?’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10km 1시간 안에 달리는 것이 일종의 기준이다. 흔히 running pace600 (육공공) 또는 530 (오삼공) 등으로 부르는데 이것은 1km 를 달리는데 필요한 분과 초를 숫자로 나타낸 것이다. 그래도 함께 훈련하던 자존심이 있어서인지, 600보다 느린 페이스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에는 기록을 공개하는 것 조차 매우 부끄러웠다. 마치 친구들과 함께 하던 시간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은 자괴감이 들었고, 나에게는 달리기 기록보다도 이러한 감정들을 극복하는 것 부터가 허들이었다.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15kg이 쪘다고 투덜거렸는데, 입사한 다음의 생활 습관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부끄러웠다. 달리기 속도는 느려졌지만 질량×속도로 계산되는 운동량의 값은 기가 막히게 유지됐다.

     때문에 우선은 달리기 자체에 대한 장점을 다시 되새기고, 적당한 심박수를 유지하면서 (라고 썼지만 그냥 힘들면 좀 천천히 가며 쉰다.) 일정 거리를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한 때 주변인들에게 운동화를 신은 뇌 (spark: the revolutionary new science of exercise and the brain)’라는 책을 극찬하며 권한 적이 있다. 이 책에는 달리기를 하면 건강에 좋아요를 넘어서는 충격적인 효과들(학습능력 고취, 기분 건강 장애 개선 등)에 대해서 다양한 임상 사례들과 함께 과학적이고 상세하게 서술하였다. 인상적이었던 예시들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1. 펜실베이니아 타이터스빌 학군의 학교들의 0 교시 체육수업 도입(2000)이 주(state) 평균 미만에서 평균보다 높은 학업 성취도(읽기: 상위 33%, 수학: 상위 32%)를 불러 일으킴
    2. 운동이 항우울제 졸로프트보다 더 효과적 (2002 년 듀크대 연구진의 연구 결과)
    3. 공황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한 10 주의 실험과 6 개월 동안의 추적 검사 결과 운동을 한 환자들이 약물 치료를 받은 집단과 비슷하게 불안장애 증세가 완화됨 (1997 년 독일 정신과 의사 안드레아스 브룩스)
    4. 항우울제가 잘 듣지 않는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12 주 동안 운동 처방을 한 결과 우울증 증세가 크게 줄어듬. (2006 년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
    5. 미국의 신경과학자 아서 크레이머가 운동을 하지 않는 60~79세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그중 절반에게만 유산소운동을 시켰더니 6개월 후에 그들의 전두엽과 측두엽이 커진 사실을 알아냄. (2006, UIUC https://doi.org/10.1093/gerona/61.11.1166)
    6. 기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약물 중독, 임신 폐경기 증후군, 치매 등에 이르는 각종 질병들을 예방하는 데에도 효과를 발휘함.

    이 책에서 이야기 하기를 중요한 것은 심박수라는 것이다. 운동의 강도를 최고 심박수 (220-만 나이)를 기준으로 65~90%의 심박수를 목표로 정한 뒤 운동을 하면 각자의 몸에 상관 없이 적절한 난이도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인 난이도 외에도 심박수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Brain growth factor 는 최대심박수의 80~90%에서 심장과 근육에서 생성된다고 한다. 일례로 운동할 때 심장에서 나오는 ANP (atrial natriuretic peptide, 심방 이뇨 펩타이드)는 진정제 역할을 해 공황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발작을 줄여주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K Wiedemann 2001 https://doi.org/10.1001/archpsyc.58.4.371)

     저자는 일주일에 6시간 정도를 운동에 할애하라고 말한다. 네 번은 중간 강도(65~75%) 로 약간 길게, 두 번은 강한 강도(75~90%)로 약간 짧게 하라는 것이다.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 (힘들게 하다가 쉬다가를 반복) 과 중강도 지속 트레이닝 (그보다는 낮은 강도인 60.2~80%의 심박수로 휴식 없이 지속) 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전자의 경우에는 주로 당과 탄수화물이 사용되고 후자의 경우에는 탄수화물과 지방산을 반반씩 사용하기 때문에 후자가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J strength Cond Res. 2009 Oct; 23(7):2090-5 https://doi.org/10.1519/jsc.0b013e3181bac5c5, 또는 https://naver.me/GJFU4rGs) 고강도 운동이 더 체지방률 감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Obes. Rev., 18(6), 635–646 (2017). https://doi.org/10.1111/obr.12532) 그렇지만 어느 정도 확실한 것은 뇌를 위한 운동을 원한다면 높은 심박수를 목표로 해야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어느 정도의 속력으로 뛰는 것은 확실히 인정받기엔 좋은 수단인 듯 하다. 그렇지만 그 보다는 내 심박수에 맞추어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지방 제거라는 잔소리에 굴복한다기 보다는, 심장도 근육이니 훈련시켜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종종 운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ostscript: 크로스핏 체험을 최근에 했는데 근육이 힘들다기 보다는 심장을 누가 밟고 서 있는 것 처럼 갑갑한 감각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후 버피를 훈련 루틴에 섞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아직 한 번 밖에 해 보지 않았다.)

    댓글

Copyright, 독수리부엉,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