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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격 (친밀함 또는 권력에 대하여) -230219
    창작/관찰 (수필) 2023. 2. 20. 03:26

    간격 (친밀함 또는 권력에 대하여) -230219
      2020년 부터 시작 된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어느정도 끝이 났지만, 아직 마스크를 벗는 행위가 어색하다. 마스크를 벗는 것이 달갑지 않다고 말 하는 사람들이 왕왕 보이는데, 누군가는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깎는 행위가 귀찮아서’라고 말 하고, 누군가는 ‘아이라이너만 그려도 돼서 아침잠을 충분히 잘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 한다. 나의 경우에는 빵빵해진 볼을 마스크로 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학부 초과 학기 (학위 과정을 위한 T.O.를 얻기 위해서 지냈다.) 까지 포함하면, 7년이라는 시간을 학교에 갇혀서 보냈다. 학위과정 이전에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는 바쁜 시간 뿐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도 졸업 이후의 삶 속에서 펼쳐질 관계 회복을 꿈꿔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졸업과 동시에 사회적인 거리두기는 시작됐었고, 코로나 블루라고 불리는 고립감을 깊이 느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그 간에 알음알음 사람들과 집에 모여서 시간을 보냈고, 또 지금은 그러한 거리두기에 익숙해져 다시 마스크를 벗고 민낯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회사 식당 자리마다 칸막이가 세워지기 이전에도, 원래 혼자 먹는 밥을 좋아했다. 항상 타인의 감정을 읽고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느끼지만, 내게 이 버릇 혹은 능력은 마치 ‘Role playing게임 속 캐릭터의 passive skill’ 처럼, 항상 작동 중인 기능과 같다. 특히 여럿이서 식사할 때 생기는 에너지 누수는 긴 시간의 집중을 필요로 하는 직장 등에서는 가끔씩 부담스럽기도 한 것이다. 칸막이가 막 세워졌을 때는 어색했지만 이내 그 거리를 편안하게 여겼는데, 마스크와 함께 칸막이 역시도 벗겨진 것이었다. 왠지 점잖고 또는 평범하게 식사해야 할 것 같고, 또 피곤한 기색이나 불편한 감정 역시도 드러내서는 안될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은 가족 혹은 친구에게서는 느끼는 빈도가 더욱 적다.

    이와 관련 하여,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관계에 따라 편안한 물리적 거리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그가 창시한 근접공간학 (Proxemics, https://insahara.tistory.com/289,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60974 참고) 에서는 거리두기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한다.

    1. ‘친밀한 거리’: 46㎝ 이하,
    2. ‘개인적 거리’:46~122㎝,  
    3. ‘사회적 거리’: 122~366㎝,
    4. ‘공적인 거리’: 366~762㎝

    이를 바탕으로 프로파일러들은 편안한 감정을 느끼는 거리를 바탕으로 인물 간의 관계를 유추하기도 한다. 거꾸로 관계에 맞는 물리적인 거리에서 벗어날 경우 큰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영화 ‘풀 메탈 자켓 (1987, 줄거리는 다음 링크를 참고 https://www.stevenh.co.kr/714)’을 보면, 미 해병대 신병 훈련소에서 하트만 상사가 신병들에게 고함을 칠 때 얼굴이 닿을 듯한 위치에서 있는 대로 고함을 지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화면 너머의 관객들에게까지 극한의 스트레스를 안겨주는데, 실제로 그런 상황을 겪는 입장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꼭 전시 상황의 미 해병대가 아닐지라도,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든, 복무 중 ‘표정 관리 안하냐’는 말을 (건너서라도)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상당수의 젊은 남성들이 그런 말을 군대에서 처음 들어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집중하여 감정을 읽고 부정적인 감정을 감추는 수고로운 과정은 보통 하위 계급의 역할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군의 공식적인 입장으로는 ‘명확한 문장으로 명령을 하달할 상급자의 의무’가 강조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것이 아이러니하다. 제어 불가능한 권력에는 ‘눈치와 센스’라는 이름의 열정 페이가 요구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조직의 비효율은 공멸을 야기한다. (부사관 처우 개선 필요에 대한 2023년 기사: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34, 육군사관학교 자퇴생 급증에 대한 2023 기사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4226)
    꼭 군대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러운 감정을 통제하는 일에는 은근하고 묘한 위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계가 중요한 조직일 수록 하위 계급의 감정은 드러내서는 안되는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보통 빠른 업무 하달을 위해 개인적인 감정을 다루는 절차를 생략하고자 하는 조직 문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상위 계층의 분풀이가 되는 경우엔 어떤 방향으로든 조직의 효율은 떨어지겠지만,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러한 위계조직의 방식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일례로 에어비앤비 엔지니어 유호현씨의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iaNl6zKTBfg) 또는 블로그 글 (https://brunch.co.kr/@svillustrated/6)을 보면 Role Driven 과 Rank Driven 방식에는 제각각 장점이 있으며, 전자는 변화에 후자는 속도에 우세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역할조직(Role-Driven Organization)의 경우 칸막이를 없애고 호칭을 통일하고 복장에도 자유를 주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여겨지지만, 위계가 명확한 조직의 칸막이 제거는 파놉티콘과 같은 감시탑 설치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위계 조직에서는 높은 직급일수록 폐쇄적이고 넓은 공간을 사용한다. (심지어 역할조직의 경우에도 CEO나 CFO 의 방은 보통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현대의 경직된 조직 혹은 직장이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하는 어전 회의가 아니더라도, 일상 속 바디 랭귀지에서 더 큰 공간을 점유하려는 행동 안에는 우월성 표시라는 묘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여성을 향한 구애 상황에서 남성의 비언어적 행동의 패턴은 그 결과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Getting that female glance: Patterns and consequences of male nonverbal behavior in courtship contexts”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25 (2004) 416 – 431) 이 연구에서 ‘몸을 열린 자세로 두거나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하는 동작’을 많이 하는 남성들이 이성의 호감을 얻는 경향이 높음을 발견했으며, 이를 두고 연구자들은 ‘해당 행동들이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아보이는 맥락을 가짐에 따라 배우자 가치를 긍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고 추정했다. 이를 봤을 때, “남자(의 매력 포인트)는 자신감” 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는 통계적으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이 연구가 행해진 장소가 술집(bar)이며, 단기적 목표(내가 쓴 표현이 아니다! 논문에서 사용한 표현이다…)를 가질 확률이 높은 곳임을 충분히 인지 해야 한다.
      비록 전염병으로 인해 확장되었던 강제적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인간 주변에 유지되었던 거리의 역학 관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마스크와 칸막이 너머에 있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됨에 따라 상호작용들은 다시 시작될 것이고,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간격은 여러가지 맥락으로 제 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 안에서 조금 더 자신감 있으면서도 타인의 공간을 배려할 수 있는 나의 궤도를 새로이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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