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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2 눈바람 찬 먼지가 다녀가다. 의미를 바라며 의미 부여를 나무라는 마음이 가로등을 감으며 회오리치다. 시커먼 하늘은 있고, 나는 있다. 상세하지 않지만 정교한 문장을 찾다가, 간격을 작은 걸음들로 메꾼다. 멋도 포기도 없이, 차게 단단히 웅크린 공간을 어깨로 기대어 밀어낸다.
191024 향 버석거리는 모래에 외발 꽂고 조용히 비명을 지른다. 안으로 삼켜낸 눈물이 다 타지 못해 그을음으로 사방을 가득 채운다. 불을 꺼야 보이고 눈을 감아야 보이는 적막 너머 너의 벙긋거림 실오라기 같은 기억들이 피어오른다.
190522 호우 내 인생의 유일한 목격자는 그것들이 잊혀진 줄로만 알았네 순간이 순간인줄 알았건만 흩어지는 입김 처럼 저 멀리 떠나보냈던 것들은 하늘을 둥 둥 떠다니다가 비처럼 다시 뺨을 때리고 낮과 밤이 다른 반구의 섬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들을 다시 마주하네 아버지, 어머니, 친구들, 그 연결의 빈자리가 끌고다니는 폴라론들 학습된 실패들 나의 그림자들 차마 지지 못한 십자가와 골고다의 내리막들
190113 Sholomo - same time에서 영감을 받음 화해 안대를 쓰고 마디가 떨어져나갈 것 같던 아귀를 놓아본다. 나의 온 우주가 조용히, 온전히 부유한다. 세상이 뒤집히고 중력엔 방향이 잊혀질 무렵 나를 끌고 들어온 시간의 썰물이 경계를 융해하면 남지 않을 현상일까 서로에게 녹아 들던 그 향기로 온 세상에서 매 번 다시 만나 나는 언제나 당신과 화해할 것이다.
180114 밥 너를 먹이기 위해 거죽 다 벗겨내고 불가마에 뛰어들고 깊은 우물 바닥에 잠겨 폐포 끝 까정 물을 들이켰지 괜찮다. 새하얀 민낯으로 더운 입김으로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하리.
171025 꽃밭 돌고래와 우주가 되는게 꿈인 천사가 있다. 일그러진 그릇에 구멍이 나면 모든 색깔이 한 번에 터져나와 모든 것이 되고 싶던 자리에 그제야 허공이 피어나고 그 위에 홀로 서 추락하는 지점에야 비로소 깨닫는 질량이 궤적을 그린다. 야호 묵직한 주먹다짐 골탕이 가득한 시멘에 행복한 꽃뿌리 햇살 한 뿌리 심게 좋은 씨를 소금소금 뿌린다 보여주고픈 것들 해주고픈 것들
170915 해 질 무렵 안개꽃이 석양에 젖어 금빛으로 물들었네 햇빛을 진하게 개어 낸 순간들이 무한한 프레임에도 다 담기지 못해 나를 끌어 안고 또 너의 머리칼 위에 흐른다
170911 살구빛 나를 만나는 당신을 계속 만나기 위해 종일 당신과 싸우다 백기 한 송이 던지고 말았다 하얀 꽃잎에 그을린 듯 붉은 빛 숨겨둔 것은 나 일 수도 당신 일 수도 없는 아린 나의 고백이다 총총
마당 2017-04-09 오후 2:18 마당엔 콩도 날 수 있고 풀도 날 수 있고 꽃도 날 수 있고 집 앞 마당엔 평상 끌어다 누울 수 있고 고추 고등어 말릴 수 있고 아궁이 쌓아 떼울 수 있고 집이지만 빈 곳 매 바닥 부터 시작 하는 곳 수가 있는 곳
일출 2017-02-05 오전 5:04 미닫이는 파도엔 고저가 없는데 해가 뜨는 곳에서 부터 바람이 분다 반짝이던 별 들이 일렁이는 이불을 덮으면 새하얗게 부숴지는 수평선! 그 앞에 생의 의미, 무게 모든 질문들이 몰려오고 조각 조각난 수평선을 기어오르는 배 위에서 어부는 다시 하루의 그물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