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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면 - 개운한 아침을 위하여 (230416)
    창작/관찰 (수필) 2023. 4. 16. 21:27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면 꼭 따뜻하고 개운한 느낌이 함께한다. 말캉하고 따끈한 부드러운 길쭉한 고양이 한 마리가 몸을 부벼온다. 털은 길쭉하고 사이사이엔 밍크같은 질감의 솜털이 쫌쫌하다. 색깔은 대개 하얗고 또 군데군데 얼룩덜룩 한데, 안아달라며 보채는 핑크색 발바닥은 발톱을 말아 쥐고 지키고 있어 상냥하고 또 잔망스럽다. 떼어내야 한다고 한참을 씨름하며 흐린 정신의 수면을 오가다 보면, 사실 고양이 같은 것은 없고 나는 X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나친 개운함에는 언제나 불길함이 함께한다.

    어른으로서의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또 하나의 표본이 되어 모두가 약속한 시간을 빗맞은 나는, 한산히 표류하며 몽롱하다. 몹시 피로한 날에는 마치 거대한 주사기에 식염수를 가득 채우고 나의 뇌를 팔다리로 밀어 넣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열정이 넘치던 밤의 활기는 어디로 갔는지, 성실한 '아침형 인간'을 향한 발버둥은 한 세대가 무색하다.

    아침엔 진짜 너무너무 졸립다. 아니 힘들다. 단순히 잠의 유혹을 떨친다 정도의 느낌이 아니라 기절할것 같은 감각과의 사투라고 항변하고 싶다. 실제로 아침형 인간이 되기가 어려운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 영국 서레이대 사이먼 아처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per3 유전자가 짧은 사람이 '수면시간은 다른 사람과 비슷하지만 아침잠이 유독 많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저녁이면 정신이 맑아져서 밤늦게 잠자리에 들고 이 때문에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고 한다. faxl3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경우도 우리 몸은 하루를 길게 인식해 수면 주기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유전적인 원인 외에도 더 영리한 인간들이 더 저녁형 인간일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들도 있다. (2009년 영국 런던정경대 사토시 가나자와 교수팀은 ‘왜 저녁형 인간이 더 영리한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미국의 청소년 20,745명을 대상으로 수면패턴과 IQ와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집단의 IQ가 더 높게 나왔다고 밝혔다. '인간은 낮에는 생활을 위한 일을, 밤에는 독창적인 일을 하며 진화했기 때문에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 늦게까지 깨어있도록 발달했다'고 당 연구팀은 추론했다. 스페인의 마드리드대학 심리학과 연구팀도 2013년, 12~16세 청소년 88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저녁형이 창의력이 높고 귀납추리능력과 문제해결능력이 우수하다고 발표했다.) 겨울일 수록 밤이 길어서 아침에도 잔여 멜라토닌(수면유도 호르몬)이 있어서 기상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를 보면, 개인 별로 멜라토닌을 생성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어 아침형/저녁형 인간이 나뉜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선조들의 거주지에 일조량이 다 같았을 리 없기에 사람마다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흑인들은 다른 멜라토닌 배출량을 가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Am J Hypertens. 2019 Sep; 32(10): 968–974. Published online 2019 May 21. doi: 10.1093/ajh/hpz083)
    이렇게 유전적 변이, 나의 인종적 특징 혹은 지능/창의성 등 여튼 모종의 요인들이 개인적 게으름 외에도 나의 아침을 힘들게 할 수 있는 잠재적인 원인일 수 있다!

    나는, 사리분별이 안되고 짜증도 많아지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움직이기 위해, 맑은 정신일 무렵 미리 여러가지 장치를 설정해 왔다. 수십개의 알람을 맞춰두는 것은 기본이고, 더 일찍 알람을 맞춰둔 채로 자리에 앉아 팔다리에 힘이 실릴때 까지 멍때리는 시간을 미리 배정해둔다. 눈이 좋지 않을 때는 (지금은 라섹수술을 받아 안경을 쓰지 않는다.) 안경을 썼을 때 맑아지는 시야와 함께 잠이 깨니까 안경을 두는 장소를 항상 정해두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때 였나, 스스로를 깨우기 위해 3중 장치를 해 둔 적이 있다. 1. 물을 채운 세숫대에  2. 더 작은 바가지를 뒤집어 넣어 바닥 부분이 수면 위에 드러나게 하고 그 위에  알람시계와 안경을 둔 뒤 3. 이를 커다란 쇠 바구니 (당시엔 쓰레기통이었다.) 로 덮고 그 위에 아령을 올려뒀었다. 무거운걸 치우면서 긴장하고 또 알람을 끄는 과정을 번거롭게 해서 시간을 지연시키고 물도 코앞에있으니 바로 정신차리고 안경을 쓰는 상황을 생각했는데, 물론 소용이 없었다.

    스마트 폰을 갖게 된 이후에는 '알라미'라는 어플을 사용햇는데 이 어플은 미리 정해둔 장소에 가서 사진을 찍어야 알람이 꺼지는 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가수면상태의 나는 생각보다 강력해서 퍼즐풀기 등의 미션은 너무나 빠르고 정확히 수행해 냈고 밖으로 나가 사진을 촬영하는 미션은 폰의 전원을 꺼버리는 식으로 대응해버렸다. (최근에는 전원끄기 방지 기능 및 앱 삭제 방지 기능이 추가됐다고 한다. 다만 전원끄기방지 기능은 특정 안드로이드 버전에서는 동작하지 않아 대응중이라고 한다.) 이후 그나마 효과를 좀 본 방식은 소리가 아닌 빛을 이용한 방식이었다. 밝은 곳에서는 잠들지 못하는 스스로의 특징을 이용해 스마트 라이트 (샤오미의 Yeelight 제품들을 쓴다.) 를 이용해 '빛' 알람을 설정해두니 기상이 훨씬 용이했다. 그것만으로는 조도가 부족해 스위치 봇이라는 기기를 사서 형광등 스위치에 부착했는데, 여기에도 알람을 설정할 수 있어서 아침 기상이 더 수월해졌다. 하지만 넘치는 잠투정은 종종 가상의 고양이를 만나게 한다.

    사실 제일 좋은 것은 일찍 잠드는 것이다. 잠드는게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하루가 아쉽고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드는 날이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쓰러지듯 잠든다. 수면위생이 엉망인 것이다. 블루라이트를 포함한 빛은 수면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지연시켜 뇌를 계속 깨어있게 만든다고 한다. 좋지 않다는 관념은 알고있지만 무언가 내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렇게 '힘들었던 또는 불만족스러웠던 하루에 대한 보상심리로 인해 수면을 미루는 행위'를 '보복성 잠 미루기 (revenge bedtime procrastination)' 라고 한다고 한다. 이 용어의 출처는 명확하지 않은데, 2018년 중국의 SNS상에서 유행한 표현인 (bàofùxìng áoyè) 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의학적 소견을 바탕으로 내려진 진단명은 아니지만, 동서를 막론하고 큰 반향을 얻은 것은 그만큼 현대인의 자기 통제감 또는 효능감이 수면습관과 큰 상관관계를 갖고있다는 간접적인 증거일것이라고 생각했다.

    꼭 객관적인 증거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나의 경우엔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낸 뒤 후련한 마음으로 잠든다. 온전히 살지 못한 하루가 남은 날에는, 그것이 잠들기 전과 후로 나를 쫓아온다. 쓰러지듯 잠든 날이면 대개 잠들때 보다 몇배의 피곤함이 아침에 몰려온다. 미리 편안히 잠을 청했을 때는 견딜만한 정도의 스트레스를 느끼며 깨어난다. 잠들기 전에 운동을 하는 것이 숙면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은 알지만, 최소한의 뿌듯함을 위해 징징거리며 헬스장에 간다. 침대 위에 얼굴만 동동 떠있는 청춘이 되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다.

    뿌듯하게 잘 살았다면 달게 자겠지만, 하루가 순탄치 못했거나 운동한지 얼마 되지않아 잠이 잘 오지 않을 경우 내가 선호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얼굴부터 사지 끝까지 근육을 하나씩 이완하기 (특수부대수면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고, 나머지 하나는 478호흡법으로 알려져있는 호흡법이다.
    특수부대 수면법은 미해군에서 개발한 방법으로 얼굴주변의 모든 근육(43개라고 하는데 나는 주로 눈 코 입 목 턱 혀를 의식한다)을 이완한 뒤 어깨와 팔을 완전히 이완시키고 다리의 근육(허벅지 종아리 발목 등)을 의식하며 힘을 뺀다. 이후에도 잠이 오지 않고 생각을 멈출 수 없다면 매우 평화로운 장소를 상상하라고 한다.

    478호흡법은 흡기에 4초 호흡정지에 7초 호기에 8초를 배정하여 심호흡을 하는 방식으로 프라나야마라는 호흡에 집중하는 요가의 호흡방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나, 미국 애리조나 대학의 앤드류웨일박사를 통해 유명해졌다고 한다 (2015). 2022년 7월에 태국의 연구자들이 43명의 건강한 젊은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러한 호흡 방식이 심혈관 질환 및 제2형 당뇨병의 위험을 줄이고 폐 기능을 향상시켰다고 했다. 이러한 방식은 몸 또는 말초에서의 반응이 거꾸로 뇌에 영향을 준다는 '바이오 피드백'의 관점에서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연구 결과에서 호흡동석부정맥 RSA [respiratory sinus arrhythmia, 교감 신경계의 흐름에서 호흡과 미주 신경(심장, 폐, 부신, 소화관 등의 무의식적인 운동을 조절, 자율신경계의 부교감 신경 가지의 중요한 구성 요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동방 결절(주기적으로 전기 신호를 보내 심장의 수축 주기를 조절)의 작동을 조절하여  부정맥(맥박의 빠르고-빈맥- 느림-서맥- 을 칭함)이 보이는 사이클.] 바이오피드백 중 분당 6회의 호흡이 심박수를 낮춘다고 말하고 있다. 478호흡법은 분당 3~4회의 호흡수를 가진다. 또한 흡기에는 4초 호기에는 8초를 사용하는 이유는, 흡기시에는 심박수가 올라가고 호기시에는 심박수가 떨어지는 것을 정교하게 반영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호흡을 들이킬때는 심장의 수축 힘을 억제하는 미주신경이 지연되어 심박수가 증가하는 것이 세부 원리이다.

    이래저래 이 방식들이 헛소리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글을 장황히 썼지만, 결국은 핵심은 몸과 마음의 이완이다. 항상 단단하고 잘난 것은 없다. 우울해지고 무기력한 배경에는 거의 누적된 피로가 있어 보인다. 갑옷을 입고 편히 잠드는 사람은 없다. 또 영원히 깨어있는 사람도 없다. 누구든 밤에는 말캉한 고양이가 되어야 단단하고 충만한 삶을 불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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