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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2/2, (퇴원기) 221225창작/관찰 (수필) 2022. 12. 26. 00:00
https://seowlite.tistory.com/83 에 이어서.. 긴 하루를 보낸 뒤에도 며칠 간 고열은 계속 됐다. 다만 지속적으로 처음과 같이 39도에 육박하는 고열까지는 발생하지 않았고, 나는 내 힘으로 병원 지하 1층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제로 콜라와 김밥 정도는 사 올 수 있게 됐다. 혈관을 통해 항생제를 넣어서 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심호흡을 시도하면 빡빡한 느낌이 들어 마치 누군가가 나를 밟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아무것도 시도하고 있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감사해야하나? 하는 갈 곳 없는 원망도 조금 있었다. 옅은 대야에 담긴 물고기 처럼 최대한 초점 없는 눈으로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고자 노력했다. 월요일 아침이 되었고, 새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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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1/2, (입원기) -221208창작/관찰 (수필) 2022. 12. 8. 23:40
원인을 모르겠어요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병원을 총 4군데를 갔다. 내가 있는 작은 동네의 두 병원 부터, 강남 한 가운데에 있는 병원, 그리고 대학병원의 응급실까지. 가장 대단할 것 같던 강남의 내과는 유독 채혈을 못했다. 열과 오한과 통증 외에는 증상이 없으니 피를 뽑기로 했지만, 한시간 동안 간호사들은 돌아가며 양 팔을 제각각 서너번씩 쑤셨는데도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다. 주사로 해열제를 맞아도 열은 38.3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보통은 고열에는 따라오는 증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호흡기가 감염이 됐거나 소화기가 감염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기침을 하건 설사를 하건 신체가 대응하면서 열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시간이 갈 수록 증상이 심해지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닙니다. 비록 간의 문제인지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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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수필) 221127창작/관찰 (수필) 2022. 11. 28. 02:59
누구나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맞이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할 일이 많은 월요일이 다가오기 전 날 밤에 아침을 대비해 군장을 챙기듯 여분의 잠을 포획하려 하거나, 간혹 할 일이 없는 초저녁에 심드렁 하게 침상에 눕거나, 낮 내내 게으른 시간을 즐기다가 다급히 맞이하는 저녁이 있기도 하다. 잠이 나를 밀어붙이지 않고 되려 내가 잠을 쫓는 밤이면, 익숙하던 공간이나 나의 육체도 낯설게 느껴진다. 조용한 침실에서 몸에 힘을 뺀 채로 눈을 감고 있으면 딱 내 몸 만큼의 공간이 나에게 허락되어 그 안에 내가 담겨있는 혹은 갇혀있는듯 한 생각이 든다. 두려운 감정이 들어 불을 켜면 스스로가 물에 넣은 티백처럼 존재가 확장이 되는 기분이 든다. 정확히 내 시선이 닿는 곳 만큼의 영역을 나는 이해하고 있고 예측할 수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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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갇힌 말의 해방 (짧은 생각)창작/관찰 (수필) 2022. 11. 7. 01:47
세상엔 색맹인 사람이 있다. 신호등이 밝아졌다 혹은 어두워졌다 외에는 알기가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마창가지로 강아지들은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만 볼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들의 세상에 붉은 색이란 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분명 붉은 색은 존재한다. 말을 할 줄 아는 강아지들의 세계에서, 우연히 붉은 색의 존재를 알게 된 강아지가 붉꽃의 색을 묘사한다고 가정해보자. 말이라는 것은 보통 이미 경험되고 증명된 것들을 지칭하는 명확한 정의와 지칭단어들로 구성되어있다. 이런 경우 언급된 적 없는 것을 어떻게 언급해야할까? 깨달은 강아지는 파란색에서 초록색으로의 변화와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의 변화를 병치한 뒤, 그리고 노란색 다음의 단계가 또 존재함을 역설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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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취에 관하여창작/관찰 (수필) 2022. 11. 1. 20:14
군대에 있을 때 나는 이발병이었다. 당시 만나던 연인을 만나기 위해서, 부대원들의 머리를 밀어주며 분기에 하루정도의 휴가를 모으고자 자원한, 추가적인 봉사활동이었다. 비록 그 휴가를 원하던 곳에 쓰지는 못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작업이 좋았다. 이발소 건물은 건물이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벽돌을 대충 쌓아 올려 만든 큐브에 비닐로 된 창문과 판자로 된 엉성한 문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머리카락이 몸에 달라붙는게 싫어서 병사들은 웃통을 벗은 채로 머리를 깎는데, 한겨울 어느날 밖에 내린 눈 처럼 하얀 커트포를 펼쳐 얹으면, 그들은 눈밭에 구르는 것 처럼 몸서리를 쳤다. 어스름한 형광등이 비추는 공간에서 머리를 깎다 보면, 휴가를 앞둔 설렘, 이별에 대한 아픔, 사회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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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수필)창작/관찰 (수필) 2022. 10. 17. 13:07
향 (수필) -221015 누구든 사춘기가 되면 한번 쯤은 향수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하관에 가시가 돋을 즈음이면, 소년들은 팔굽혀펴기가 사막처럼 지루하고 더딘 작업이란걸 깨닫게 된다. 이 후 쌈짓돈을 야금야금 모아 올리브 영 같은 곳에 가면, 마치 처음 커피를 고르듯 떨리는 손으로, 할인율과 양이 넉넉한 향수를 집어들게 되는 것이다. 보통 남자들이 처음 입문(?) 했던 향수는 무난한 CK one이나 시원한 향의 존바바토스 아티산 등인 것 같은데, 이후 불가리나 페라리 같은 화려한 이름을 가진 녀석들이나, 딥디크 조말론 처럼 수줍은 친구들도 시도해보면서 각자의 취향과 사정에 맞는 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화려한 향수를 쓰는게 조금 쉽지 않았다. 혼자만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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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 (삼켜진 것들에 관하여) - 수필 221002창작/관찰 (수필) 2022. 10. 2. 13:47
식사를 하고 나서는 항상 졸음에 시달리는 편이다. 항상 소화가 꽤 느린 편이라고 생각해왔다. 이것저것 많이 먹는 나를 보며 소식가들은 속이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린왕자에 나오는 뱀이 코끼리를 삼키고 잠들어 있는 것 처럼, 부른 배를 유지한채로 멍청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중에 직장에서 가지는 점심식사라던지 목표가 있는 저녁 전의 석찬을 위해 적당한 난이도의 메뉴를 고르는 것은 항상 중요한 문제가 된다.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소화 속도가 느린것들을 (섬유질 또는 가공이 과하지 않은 살코기들)먹을 때면 뇌에서 피가 몽땅 달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며 몽롱해진다. 그렇다고 소화가 편안한 탄수화물을 위주로 먹으면 속은 편안한데 나른해서 견딜수가 없다. 폭식이 잦았던 20대에는 이렇게까지 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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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들어가는 것) -수필창작/관찰 (수필) 2022. 9. 18. 23:45
입 (들어가는 것), 수필- 220918 윤종민 한 때 당질제한 식단을 맹신한 적이 있다. 연인을 떠나 보낸 것에 대한 원인을 눈에 보이는 것에서 부터 찾았던 탓에 다이어트에 대한 고민을 했었고 열심히 찾아보았다. 빠르게 몸에서 분해되는 속도인 Glycemic Index (GI 지수) 가 낮은 것들을 위주로 먹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고 여분의 당은 최종당화산물이 되어 지속적으로 신체를 파괴한다는 내용이었다. (https://seowlite.tistory.com/m/26) 당을 제한하고 야채와 고기 위주의 식단을 선호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것들을 많이 먹는 것이 다이어트에 무용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데는 약 2년정도가 걸렸다. 근래 칼로리 계산 어플인 YAZIO를 이용하여 무의식적으로 먹던 고기와 튀..